시커의 영역 새소설 10
이수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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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들은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다. (70쪽)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핑계를 찾으려 한다. 그 일의 원인이 내가 아닌 주변 환경이나 인물 때문이라고. 나비효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미친다. 알고 있다. 모든 일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선택과 결정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려움을 피하려고 누군가 대신 결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삶의 주인은 우리니까.


제4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작 『시커의 영역』 은 타로 점을 보는 엄마 ‘이연’과 딸 ‘이단’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군가 뽑은 타로 카드에 답을 해주는 엄마. 사람들은 이연을 ‘마녀’라 부르고 그녀 역시 마녀임을 인정한다. 여기서 우리는 마녀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역사나 문학의 세계에서 그동안 마녀는 어땠는가. 어둡고 무섭거나 두려운 존재가 많았다. 마녀는 그녀 마녀의 삶을 사는 것뿐이다. 소설에서 이단이 이연을 찾아온 친구 마녀의 말처럼. 나쁜 마녀이거나 악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쁜 마녀에요?”

“세상에 나쁜 마녀는 없단다, 얘야.”

“그럼 어떤 마녀에요?”

“마녀는, 마녀의 삶을 사는 사람이지.” (93쪽)


부모를 따라 미국에 간 이연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마녀였던 ‘키르케’를 만나 자연스럽게 마녀의 삶을 살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단과 함께 살아간다. 열두 살 이단은 그런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생물학적 아버지 ‘에이단’을 만나 단짝 로운과 함께 영어를 배운다. 에이단은 불운의 기운을 믿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이단은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에이단와 이단,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이 설령 불운일지라도 이단은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에이단은 뉴욕에서 사고를 당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이연은 마녀의 의식을 행하고 이단은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이연과 점점 거리를 두며 이단은 뉴욕의 대학에 입학하면서도 독립한다. 뉴욕에서 이단은 류이를 만나 연인이 되고 아버지 에이단에 대한 이야기까지 꺼낸다. 그리고 류이에게 놀라운 사실을 전해 듣고 시커의 영역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니까 선택하는 이, 에이단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까지.


이수안의 소설은 마녀라는 인물 설정만으로도 독특한 분위기로 호기심을 유발한다. 마녀, 타로카드, 마법, 운명은 뭔가 신비롭고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이 년의 양어머니 키르케를 시작으로 이어온 마녀의 삶, 이단이 마녀의 삶을 선택할지 알 수 없지만 소설에서 서로를 지지하는 마녀의 연대는 감동적이고 아름답다. 달빛 아래서 의식을 행하는 모습마저도 성스럽다.


엄마는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 안에 마법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지 그것은 시커의 영역이라고 했다. 주술사든, 마법사든, 타로리더든 혹은 마녀라 할지라도 그것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무작위로 뽑아낸 카드가 현실 세계를 작동시킨다는 믿음은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 그래도 나는 가끔 타로점을 본다. 시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247쪽)


‘시커’(seeker)는 타로점을 보러 온 사람을 뜻하지만 무엇을 찾고 갈구하는 사람이다.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 시커일까. 그건 오롯이 시커만이 결정할 수 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향해 나가갈지, 무엇을 간직할지. 혼란스러운 사춘기와 에이단을 잃은 슬픔으로 방황하던 이단은 조금씩 그것을 느끼고 알아간다.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는 일, 그렇게 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시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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