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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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삶은 언제나 아쉬운 장면뿐이다. 그중에서도 몇 장면은 평생 동안 불에 덴 상처로 남아 자신을 따라다닌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는 흐릿해지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은 선명하게 남는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에게만 나타나는 환영처럼. 그것을 포옹할 수 있을 때 삶은 비로소 완성되는지도 모른다. 후회와 실수를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기를 낼 때 삶은 이전과는 다른 삶으로 흘러갈 수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러한 보편적인 진리를 우리는 너무 늦게 깨우친다. 아니, 후회로 가득 찬 시절에는 전혀 알 수 없다. 상처와 고통을 견디며 조금씩 성장한다.


그래서 M.O. 월시의 『마이 선샤인 어웨이』의 화자가 들려주는 그의 십 대 시절의 이야기는 그저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모르기 때문에 서툴렀던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고 상대를 위한 노력이 오히려 아픔을 주고 말았다.


소설은 ‘너’라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글이다. 그러니까 고백이자 용서를 구하는 글이라고 할까. 1989년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의 한여름에 일어난 사건이 시작이다. 화자는 그 사건의 용의자 중 하나가 자신이라고 말한다. 평범하게 흐르던 여름 날, 달리기를 잘 하는 학교 인기 스타인 화자가 짝사랑한 열다섯 살 린디에게 벌어진 성폭행 사건이다. 네 명의 용의자에 화자도 포함된다. 스스로가 용의자라고 밝히니 범인을 찾아내는 스릴러라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불량아로 찍힌 구순열 흔적이 있는 학생, 많은 고아들을 맡았던 위탁가정의 남편 정신과 의사, 위탁아동의 한 명인 문제 학생과 화자. 한 명, 한 명에 대한 소문과 동네에서 그들의 행동을 통해 범인으로 유추하면서 일상을 이어간다. 화자의 눈에 비친 린디는 이제 전혀 다른 사람이다. 어찌 같을 수 있을까. 육상부도 그만두고 학교에서 어울리는 친구들도 달라졌다. 오직 화자만이 그녀를 관찰하고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하지만 열네 살 소년이 생각하는 방법은 너무도 무지했다. 화자의 말실수로 인해 학교에는 린디의 소문이 자세하게 퍼진다. 무엇이 린디를 위한 일인지 화자는 잘 몰랐다. 그저 린디와 멀어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바랐다. 그래서 반드시 범인을 잡아야만 했다. 사춘기 소년에게 그것이 가장 중요했으니까.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비밀상자에 담긴 린디에 관한 것들이 어머니를 좌절하게 만든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고 없이 더 큰 불행을 물고 온다. 누나가 죽음으로 집안의 어둠은 걷힐 줄 모르고 어머니의 우울은 깊어간다. 당시에 화자는 그것들의 실체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열네 살의 소년에겐 당연한 일이다. 린디와 통화를 하면서 린디의 모습을 상상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일이 더 소중했다. 그래서 밤마다 린디의 전화를 기다린다. 동네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화자는 린디가 괜찮아진 건 아닐까 착각한다. 하지만 그럴 리가. 그동안 범인을 찾기 위한 화자의 말과 행동들이 오히려 린디에게 가장 큰 상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린디가 그 일로 인해 하루하루를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이제 범인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린디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걸 화자는 너무 늦게 알았다. 린디가 어머니와 함께 동네를 떠나고 서로가 서로에게 잊힐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재회한다. 남편과 함께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난 린디. 서로에게 아름답고 행복했던 배턴루지의 기억만으로 가득하다. 과거의 나쁜 기억은 사라진 것처럼. 하지만 린디가 얼마나 힘겹게 그 시간을 통과했을지 알지 못한다. 사건의 피해자로 스스로를 버티며 살았을 시간들.


소설은 린디의 사건을 가장 중심에 둔 것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삶의 층위를 보여준다. 1990년대의 배턴루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는 아주 훌륭한 사회소설이자 아름답게 아픈 성장소설이다. 순수하고 솔직한 사춘기 소년의 가슴 아픈 짝사랑의 기억뿐이 아니라 부모의 이혼과 가족의 죽음을 통해 조금씩 삶을 배우고 알아간다. 그때 밝히고 싶었던 진실이 누구를 위한 진실이며 진실이라는 게 과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일상을 공유한다고 해도 기억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시간의 기억이 누군가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일 수도 있다. 어떤 기억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진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복잡하고 미묘한 삶을 생각한다. 사랑의 기억으로 회복 중인 삶에 대해서.


나아가 기억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적을 일으켜 우리를 과거로 돌려보내 다시금 우리 옆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한 여자를 바라보게 한다. 그녀는 십 대 청소년 시절에 보았던 사람과 참 다른 사람, 훨씬 복잡한 사람이다. 기억이 있기에 우리는 그녀의 삶을 총체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어머니의 삶뿐 아니라 내 삶까지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우리를 위해 한 희생. 우리가 겪어낸 고통. 우리가 어머니에게 안긴 고민. 어머니가 우리를 키운 방식. 그래 그래 그래.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사랑이다. 그것이 기억의 목적이다. (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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