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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고,라고 불렀다 ㅣ 창비시선 378
신미나 지음 / 창비 / 2014년 9월
평점 :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을 때 시집을 구매했다. 작고 얇은 시집을 손에 쥐면 아릿하면서도 따뜻했다. 어떤 날에는 시를 읽는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읽지도 못할, 시집을 쌓아두는 일이 하나의 의식처럼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한참 동안 시집들은 돌보지 못한 마음처럼 한구석으로 몰아두었다. 그러다 미안한 마음에 꺼내는 이런 시집. 신미나의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속 첫 시를 읽으며 마음이 무너진다. 어쩌자고 이런 날들에 이런 시를 읽는가.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려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이마」, 전문)
마치 다 안다는 것처럼, 나를 달래준다. 울컥 가슴에 메이는 이상하고 묘한 기분을 숨길 수 없다. 이러니 시를 자꾸만 찾을 수밖에. 7년 전에 나온 시에 이제서야 읽는 미안함이 사라지고 고마움만 커진다. 이런 시는 또 어떤가. 어디선가 나를 훔쳐보고 나를 위해 따스한 햇볕을 한 조각 뿌리는 것 같은 착각.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훔치다
쌀벌레 같은 것이 만져졌다
검지로 찍어보니 엄마였다
나는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골무 속에 넣었다
엄마는 자꾸만 밖으로 기어나왔다
엄마, 왜 이렇게 작아진 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
다음 생에서는
엄마로 태어나지 말아요
손가락으로 엄마를 찍어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잠에서 깨어나
눈가를 문질렀다 (「낮잠」, 전문)
매미가 울다가
어느 순간 뚝 그쳤다
뜨거운 길 위에서
내 영혼을 만났다
이게 네 운명이냐
내 영혼은
작은 주머니를 주고 떠났다
주머니 끈을 풀자마자
뭔가가 휙 날아갔다
그때 알았다
소중한 걸 놓쳐버렸다고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거라고
꿈속에서 나는 울었다
무언가 날아가버렸고
빈 주머니만 남았다 (「환생」, 전문)
요란한 마음 때문인지 마음 끌리는 대로 시를 읽고 내 맘대로 시를 생각한다. 시를 읽는 동안 시에 풍덩 빠져들고, 그래도 괜찮은 거 아니겠는가. 잘 모르지만 신미나의 시들은 흐트러진 조각을 잘 모아서 정리해 반듯한 감정을 그려내는 듯하다. 조심조심 그 조각을 살피고 만지는 시간은 얼마나 길고 어려웠을까. 어떤 감정을 간직하고 그것에서 태어난 시. 사적인 마음을 품게 만드는 이런 시가 참 슬프면서도 싫다. 그러니 또 이럴 때는 시는 시일뿐이라고 차갑고 단호하게 마음을 돌린다. 그래도 시를 읽는 일이 나쁘지 않다. 거칠었던 마음이 시를 읽는 동안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비가 올 거라고 했고
우산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다
당신은 우산을 착착 접은 뒤
사거리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널 것이다
비가 올 것 같다는 말은
어쩐지 희미해
눈을 감으면
4층에서 1층까지
차례로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
티스푼으로 뜬 것처럼
빗물이 파낸
작은 홈들이 길게 이어진다
반지를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약지에
흰 띠가 남아 있다 (「연애」,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