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스타그램
이갑수 지음 / 시월이일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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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유쾌한 뉴스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상한 일이다. 사는 게 재미없다는 건 진작에 알았지만 요즘처럼 그 재미가 간절하게 그리운 적도 없었다. 그 재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내가 찾고 싶은 게 정말 재미일까. 말장난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며 무언가를 계속 찾는다. 『#킬러스타그램』이라는 기이한 제목의 소설을 읽는 일도 그 무언가의 하나다. 킬러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스릴러일까? 아니, 스릴러라고 할 수는 없다. 작정하고 풍자와 유머를 건네는 약간의 블랙코미디라면 맞을까.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여야 한다.’ (14쪽)는 위대한 가업을 이어가는 가족이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이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누나에 이어 고등학생인 ‘나’까지 모두 킬러인 집안. 물론 세상에서 그들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요리를 좋아하는 할아버지, 고고학에 빠진 할머니, 의사인 누나, 검사인 형, 주부인 엄마로 지내지만 저마다의 특기를 살려 사람을 죽인다. 현재 아버지는 실종 상태다.


할아버지는 독, 할머니는 폭파, 아버지는 자살 전문가, 누나는 저격수, 형은 사고사 전문, 엄마는 사건을 의뢰받고 역할을 구성하며 후진을 양성한다. 그런 이유로 아무 기술도 없는 ‘나’는 합기도를 배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나간 삼촌이 운영하는 합기도 학원에 다닌다.


킬러가 될 때 그들에겐 콜사인이 있다. 그러니까 부캐 정도라고 할까. 할아버지는 옹심이, 할머니는 꼬마, 엄마는 마더, 누나는 제니, 형은 미네르바. 수련 중인 ‘나’는 아직 없다. 이들 가족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그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다. 그러니 그들의 목표가 반드시 범죄자를 제거하고 테러를 중단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더는 해마다 이복동생이 생겨 유산의 몫이 점점 줄어드니 아버지를 죽여 달라는 의뢰,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30년 전 곗돈을 몽땅 들고 도망간 계주를 죽여달라는 의뢰 같은 것이니까.


마더의 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갑작스러운 엄마의 유방암 수술로 인해 ‘나’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외계인 같다는 이웃을 제거해 달라는 의뢰에 이웃이 이사를 가는 방법으로 해결,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삼촌을 죽여달라는 조카에겐 독립할 수 있는 돈을 보낸다. 킬러라 해서 모두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소통하면 문제가 될 수 없다.


이쯤 되면 이 소설이 무섭거나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렇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으니까. 국제 의료봉사 단체 소속인 누나와 검사인 형의 경우를 보면 킬러 이전에도 죽음을 다룬다. 분쟁 지역에서 활동하는 누나는 재난과 전쟁으로 인해 의사가 필요하다. 때문에 제니의 표적은 외국의 요인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죽음의 숫자를 먼저 따진다. 미래를 위한 희생은 필요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죽으면 미래 자체가 없다. 전쟁에서 최초로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선도 악도 없다. 시작하는 순간 양쪽이 모두 죽고 죽일 뿐이다. (103쪽)


여전히 계속되는 전쟁을 생각한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고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된다. 그것은 진정 더 나은 사회,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것일까? 어쩌면 작가는 그런 걸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킬러들의 수다」가 생각나는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독특한 소설이다.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하나 더 말하자면 작가의 말을 대신한 ‘소설 적성 검사’도 흥미롭다. 내가 아는 소설가와 읽은 소설이 등장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없는 세상에 소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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