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을 거라 생각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란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뭐랄까, 코로나 시국에 떠나지 못한 여행지에 대한 낭만 같은 걸 기대했다고 하면 맞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썼고 너무도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셀리의 엄마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어쩌면 ‘길 위의 편지’란 제목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길 위라는 건 여행을 의미했고 낯선 곳에서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경험하는 삶에 대해 마냥 설레는 마음만 품었던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이 책은 25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여행기가 맞다. 저자 울스턴크래프트가 여행한 경로를 따라 6월에서 10월 초까지 이어진 여행, 영국의 헐을 시작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함부르크, 영국 도버로 마무리되는 여행이다. 배를 타고 떠나는 시점의 자세한 해상의 날씨, 그에 따른 저자의 솔직한 마음으로 편지는 시작된다.


여행하는 도중의 자연현상과 그것에 대처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사소함부터 여행지에 도착해 묵은 숙소의 면모와 사람들에 대한 인상까지 무척 섬세하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독자는 마치 그 풍경을 직접 보는 듯하다. 각각의 장소에서 느끼는 아름답고 훌륭한 자연의 모습, 나라의 사람들의 말과 태도로 알 수 있는 그들의 사회적 관습과 문화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편지라고 할까. 저자가 묘사한 북유럽의 자연은 말 그대로 웅장하고 경이롭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특별한 점은 저자의 통찰력과 사유라고 할 수 있다. 각 편지마다 저자의 마음을 일기처럼 보여주는데 때로 외롭고 때로 고독하고 때로 슬픈 감정들을 만날 수 있다. 거기다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추천하고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쓸쓸하고도 안타까운 건 그녀가 바라보는 시대의 단점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에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다양성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획일된 쪽으로 편향된 사회를 미리 알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나라가 자기네 나라를 닮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행자들은 집구석에 있는 편이 낫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어느 정도 윤택해졌을 때라야 취향의 연마로 만들어지고 만들어지게 되는 개인의 청결과 기품의 수준을 갖추지 못했다고 해서 국민성을 비난하는 것은 터무니없습니다. 작가들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인간 정신을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나타내는 종이 지구본처럼 가상의 구(球) 안에 가둬놓기 위해 계산된 듯한 독단적 주장을 펼치기보다는 탐구와 토론을 장려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8쪽)


1796년에 출간된 책이라는 걸 생각하면 무척 놀랍다. 그 시기에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사업차 여행을 떠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싶어서다. 21세기인 현재에도 그리 쉬운 결정도 아니고 실행도 어려웠을 테니까. 그렇기에 이런 부분에서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독을 견디며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이에게도 자신의 공포와 슬픔을 말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면의 진중한 고백이라고 할까.


소멸에 대한 공포는 제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거랍니다. 실존이 종종 불행만을 고통스럽게 의식하는 것이라 해도 저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잃는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습니다. 아니, 저로서는 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기쁨과 슬픔에 똑같이 민감한 이 활달하고 들썩대는 정신이 한낱-용수철이 툭 끊어지거나 불꽃이 사라지는 순간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먼지가 되고 만다는 사실도요. 제 영혼을 붙들고 있는 것이 한낱 먼지라니요. 우리 마음에는 소멸할 수 없는 것이 살고 있고, 인생은 꿈 그 이상입니다. (88쪽)


쉽지 않은 책이다. 하지만 한없이 다정한 책이다. 내게는 사는 동안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사유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인생 대 선배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현재에 우리 곁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삶의 가치와 진리에 대해 좀 더 깊이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우리는 끊임없이 읽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환경은 인간의 성격이 형성되는 거푸집 같습니다. 제가 최근까지 관찰한 바를 토대로 환경의 영향을 추론해 볼게요. 제가 지난번에 왜 성직자들은 대체로 교활하고 정치가들은 기만적일까라고 물었을 때만큼 심각하진 않습니다. 상업에만 전념하는 인간은 심미안과 정신의 위대함을 전혀 습득하지 못하거나 모조리 잃어버립니다. 기품이 빠진 부의 과시와 정서가 빠진 탐욕적 쾌락은 인간을 짐승같이 만들어, 급기야 그들은 영웅적인 성향의 모든 미덕을 우리의 본성 너머 무언가에 대한 낭만적인 도전이라 부릅니다. 사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을 걱정하거나 불행을 탐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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