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종교의 세계사 -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인류의 사상사
데구치 하루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까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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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관장하는 순환의 시간과 인생을 지배하는 직선의 시간, 두 개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인생이라는 직선의 시간이 끝난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어딘가로 갈 세계는 있을까? 인생이 시작되기 전에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을까? (26쪽)

태초의 인간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종교가 시작되었고 철학자가 등장했는지 데구치 하루아키의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저자가 시대별로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 그러니까 철학에 대해 설명한다. AI의 시대에 과연 종교와 철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아닐는지. 그런 맥락으로 보면 표지의 이미지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제목만 보면 어렵고 난해할 것 같지만 저자는 쉽게 설명한다.


인간이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자연계의 흐름을 궁금해하고 누가 태양을 뜨게 하고 사람의 생사를 주관하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책은 12장으로 시대순으로 종교의 첫 등장 배경부터 알려준다. 종교의 종파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시대별 등장하는 철학까지. 종교와 철학의 진화사라고 할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최초의 종교 조로아스터교부터 기독교, 불교, 유고의 변모와 그에 따른 철학 사상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동서양의 대표 사상가의 연표를 별도로 정리해 주었다. 동시대에 어떤 사상가와 종교인인 활동했는지 보여준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공자, 묵자, 붓다로 이어진다. 아테네 시대를 지나 헬레니즘 시대에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로 대표되는 다양한 학파가 등장하고 동양에서는 제자백가가 전성기를 맞는다. 이 시기에 성경의 구약이 완성되었고 유대교가 시작된다. 종교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거가 아니 현재에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 종교에 기대는 마음 말이다.


「구약성서」는 유대인에게 말했다. 지금은 힘들고 불행하지만, 우리는 본래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다. 반드시 구세주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바야흐로 종교에 선민사상이 등장했다. (160쪽)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에는 신앙 우위의 세계에서 합리성과 자연과학의 세계로 넘어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한 철학자 베이컨의 시대가 도래한다. 베이컨은 실천적 관찰과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서 귀납법을 체계화시켰고 로크로 이어지고 “인간이란 지각의 다발이다”라고 말한 흄이 경험론을 완성시킨다. 이어 너무도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가 등장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고 단언했지만 완전함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존재라 여기고 신의 존재를 생각한다.


인간이 완전함을 추구하는 이유는 완전함을 아는 신이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에 성실한 신이 나쁜 신을 이기고 승리했다. 성실한 신은 인간에게 생득관념으로 성실하고 올바른 것, 즉 완전함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인간은 나면서부터 완전함을 추구할 수 있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주장하는 신의 존재 증명이다. (295쪽)


마지막으로는 20세기 철학자로 소쉬르, 후설, 비트겐슈타인, 사르트르, 레비스트로스 5명으로 정리한다. 시대별로 종교와 철학을 정리한 저자의 설명은 보통의 독자가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좋아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종교와 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종교사와 철학서의 흐름을잡을 수 있으니 한 권으로 인류의 사상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철학도, 종교도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찾는 데에서부터 출발했다. 살아가기 위한 지혜란 불행을 마주하는 방법에 관한 지혜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불행이라고 불러야 할까, 숙명이라고 불러야 할까. 인간은 언제나 질병, 노화, 그리고 죽음과 마주하며 살아왔다. 이 피할 수 없는 숙명과 어떻게 마주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이 화두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서 늘 인간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411쪽)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면 전혀 다른 배경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저자의 말처럼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지혜를 찾는 노력은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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