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픽션 -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테마 소설집
조남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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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말이다. 지금 나에게 도시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공간일 뿐이다. 서울은 특히 그렇다. 미로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일곱 명의 작가가 도시를 테마로 쓴 소설집 『시티 픽션』에서 도시는 친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으로 다가온다. 도시를 채우는 것들은 무엇일까. 아파트가 생각나는 건 나뿐일까.

조남주의 「봄날아빠를 아세요?」는 현미경처럼 도시인의 욕망을 들여다본 것 같다. 거주공간이 아닌 투자공간으로 전락한 아파트. 역세권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을 통해 주민들의 솔직한 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아파트와의 시세 차이, 학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도시에는 home이 아닌 house뿐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만약 소설 속 인물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게 현실이구나 싶다.

‘종묘’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정용준의 「스노우」는 도시 속 거대한 고요를 상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1995년 강도 6.5의 지신이 발생한 서울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어쩌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지진과 화재는 어이없이 삶을 파괴하니까. 말 그대로 부서진 서울, 불에 탄 ‘종묘’.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는 이전의 모습을 회복하지만 종묘는 복구작업이 느리게 진행된다. 종묘해설사 ‘이도’는 이러한 사실에 화가 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속상하다. 그런 이도와 달리 경비원 ‘서유성’은 긍정적인 믿음으로 야간 순찰을 한다. 깊은 밤 종묘에서 만난 고양이에게 ‘스노우’란 이름을 붙여준 그는 그곳이 종묘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 공간은 어디일까. 그 공간이야말로 나를 아는 장소는 아닐까. 서유성과 이도에게 종묘도 그런 공간일 것이다.

“모두 잠들고 심지어 종묘의 신들도 잠들어 있는 것 같은 깊고 깊은 새벽에 관리실 책장에 홀로 앉아 있으면 이상한 감정이 들어요. 아······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꼭 장소인 것 같다니까요. 그 기분과 그 느낌이 종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갈 수도 있고 머무를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묘사할 수도 있는 곳.” (정용준의 「스노우」, 89쪽)


이주란의 「별일은 없고요」는 제목처럼 별일 없는 하루하루의 일상이라고 할까. 서울에 살던 화자 ‘수연’은 엄마가 계신 지방 소도시로 온다. 아랫집의 화재로 인한 결정이었지만 수연에게는 변화와 휴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작은 소도시에서 새롭게 알아가는 사람들과 풍경을 잔잔하게 담아낸다. 어제와 같은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계획대로 흐르는 시간들. 서울과는 다르게 조용하지만 움직이는 삶의 모습이 다정하게 전해진다. 최근 이주란 소설의 분위기라고 할까. 조곤조곤 일기를 쓰듯 담담하게 인물의 행동과 내면을 묘사한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조남주의 단편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히는 조수경의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은 내 집 마련의 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잘 보여준다. 월급을 다 저축해도 서울에서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지독한 현실을 통해 지금 이 시대의 청춘들이 느끼는 허탈과 절박함이 씁쓸하다.

언제나 틈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면 이 박사는 틈새를 찾아 회원들에게 알려주었다. 이 박사가 언급한 지역으로 회원들이 몰렸고, 사람이 몰리면 어김없이 집값이 올랐다. 카페에서는 이 박사 덕분에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떠돌았다. 이 박사가 꿈과 불안을 동시에 팔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세상에 불안을 이길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167~168쪽)

화자 ‘의진’은 유튜버의 조언에 따라 갭투자를 시작하면서 직장까지 바꾼다. 직업소개소에서 사무실의 모든 걸 처리하는 업무를 맡는다. 사장을 위해 상품권 거래를 하던 중 상대가 사기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흔적을 찾으면서 의진은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소유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과 애인 연석의 아파트를 생각한다. 부동산의 소유는 연애와 결혼의 필수조건이었다. 물질만능주의가 아니라 부동산 만능 사회가 된 것일까.

한강변에 있는 연석 명의의 아파트. 언젠가 그곳이 재건축된다면 거기 살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어디로 가게 될까.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생각들은 초고층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멋진 야경을 보며 다 잊게 되겠지. 잊고 살겠지. (조수경의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184쪽)

내게 도시는 어떤 공간일까. 좋은 사람들과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은 장소이면서도 더 이상 찾아가지 않는 곳. 그래도 그곳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들을 때면 마음속에서 몽글거리는 무언가를 외면하는 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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