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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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간다는 건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다. 거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그 세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한 번 진입한 세계를 빠져나오는 일은 어렵다. 어떤 세계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갇히거나 흠모한다. 이전의 세계는 단숨에 무너진다. 태어남과 동시에 발 들이는 세계는 가장 가까운 이들과 연결된다. 부모, 형제, 친구, 선생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게 전부라고 여긴다. 그랬던 전부가 사라지고 다른 전부가 생기는 계기는 저마다 다양하다.


제시 버튼의 장편소설 『컨페션』의 ‘엘리스’에게도 그런 한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 스무 살 엘리스가 운명처럼 이끌린 ‘코니’와의 만남. 이성이 아닌 동성, 거기다 또래가 아닌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은 유명 작가였다. 엘리스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어떤 확고함. 둘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살기로 한다.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모든 걸 다 공유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어쩌면 그건 스물의 엘리스에게만 해당되었는지도 모른다. 1980년 엘리스의 사랑은 뜨거웠다.


그런 엘리스를 찾는 한 여자가 있다. 2017년 9년을 사귄 남자친구 조와 동거를 하는 서른다섯 살의 로즈. 자신을 낳고 사라진 엄마를 찾기로 한 것이다. 어린 시절 항상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엄마의 흔적을 더듬는다. 엄마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오직 한 권의 책 「초록 토끼」뿐이다. 엄마에 대해 함구했던 아빠는 이제야 책을 쓴 작가가 엄마와 긴밀한 사이였다고 알려준다. 그게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딸이 엄마의 삶을 닮을까 걱정했던 아빠는 조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안정된 삶을 이어가길 원했을 것이다. 로즈를 낳은 엘리스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로즈는 「초록 토끼」의 작가 ‘코니’에 대해 수소문한다. 그녀의 다른 책 「밀랍 심장」을 읽고 현재의 정보를 찾는다. 엄마 엘리스를 아는 유일한 여자, 코니. 로즈는 그녀를 반드시 만나야 했다.


소설은 1980년 엘리스와 2017년 로즈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과거와 현재, 그 둘을 이어주는 건 코니뿐이다. 엘리스는 코니의 모든 걸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코니가 글을 쓸 때는 혼자여야 한다는 걸 안다. 더 많을 시간을 보내고 싶기에, 뭐든 함께해야 하기에 코니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미국행에 동행한다. 그곳에서 엘리스가 견뎌야 할 시간은 너무도 길고 힘들었다.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과 코니의 친구들과의 모임에 항상 엘리스가 있었지만 코니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확인이 필요했던 엘리스에게 코니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일 때문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스물셋의 엘리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멋진 코니에 비해 엘리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엘리스에게 전부였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럼 2017년 현재의 로즈의 세계는 어떤가. 부모의 재정 지원으로 백수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남자친구는 조는 엄마를 간절하게 찾아야 하는 로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엄마에 대해 단 한 가지라도 알고자 신분을 속여서라도 코니의 비서가 되겠다는 로즈를 이상하게 여긴다. 로즈에겐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로즈가 아닌 로라가 되어 관절염을 앓는 노 작가 코니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원고를 대신 타이핑하면서 엘리스에 대한 질문을 할 기회를 엿본다. 로즈가 아닌 로라는 자유로웠고 객관적으로 로즈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조금씩 코니와 가까워질수록 로즈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유를 잊은 채 이대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코니가 삶을 마주하는 태도는 아름다웠고 어느덧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지난 삶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소설은 끝내 엘리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코니가 로즈가 엘리스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로즈가 태어난 상황에 대해 알려주지만 엘리스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로즈를 두고 떠난 엘리스의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로즈를 낳고 우울증에 힘들었던 엘리스는 코니가 그리웠고 화해하고 싶었다. 그건 코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기분이 들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해주는 대신 항상 엘리스에게 어딘가를 가 보라고 제안했다. (436쪽)


인생은 참 이상하지 않은가…… 전 남자친구가 코니를 데려오다니. 그리고 인생은 기적이 아닌가, 코니가 오고 싶어 하다니. 할 이야기가 너무 많고 서로 용서할 일도 너무 많았다. (455쪽)


그러나 둘의 만남은 영원한 이별로 이어졌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사랑했던 기억을 품고 엘리스는 떠났다.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녀의 삶이니까. 로즈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조와의 이별과 그 이후 로즈가 결정한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결정도 후회는 남는 것이다. 엘리스와 로즈는 코니를 만나면서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이전과는 다른 삶,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기쁨을 느꼈다. 설령 그 세계가 춥고 쓸쓸하더라도 괜찮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막연하게 로즈가 엘리스를 찾기를 바랐다. 엄마와 딸 사이에 흐르는 어떤 뜨거움을 기대했던 것 같다. 소설을 다 읽고 둘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느꼈다. 로즈는 엄마가 어떤 생을 살았는지 알았고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엘리스의 인생에서 엄마는 일부일 뿐이고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생을 살든 누구를 사랑하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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