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눈
장정옥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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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옥의 소설집 『숨은 눈』을 읽으면서 자꾸만 제목을 ‘숨은 눈’이 아니라 ‘숨은 눈물’이라고 여겼다.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을 수많은 여성들이 생각나서 그랬다. 내 어머니와 언니와 친구와, 기사의 실제 인물, 소설의 주인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 중 어느 하나는 나와 닮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소설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서 한동안 멍했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여자의 마음을 묘사할 수 있는지, 여성작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6편의 단편엔 저마다 여자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없단 말인가.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제작 「숨은 눈」은 이혼한 여자의 심경을 다룬다. 결혼생활 25년의 마무리는 이혼이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진부하고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기엔 너무도 복잡했다. 이혼을 했지만 딸과의 관계는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다. 이혼한 전 남편의 간병인이 되는 상황이라니. 상상할 수 있을까. 담석으로 입원한 전 남편. 사랑이라고 우겼던 여자와는 헤어졌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자신이 병상을 못 지키면 딸애가 해야 할 일이었다. 딸을 위한 선택이다. 이상한 건 이혼을 한 후 어디선가 전 남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도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CCTV, 심지어 관리사무소의 수족관 속 물고기의 시선까지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여자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삶.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을 꿈꾸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때로 이혼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을 참아내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정리할 수도 없다.

이혼을 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달의 노래」에서 그런 감정을 만난다. 이혼 사유는 아빠의 외도였다.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한다. 아빠는 오빠의 학비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온다. 아빠가 올 때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정작 아들은 그런 아빠를 보려 하지 않는다. 아빠가 다녀갈 때마다 술에 취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화자인 ‘나’는 몰래 아빠와 여자가 운영하는 식당을 훔쳐본다. “아빠는 숯불에 손을 쬐며 달을 보았다. 나는 같은 피를 나눈 사람끼리 느낄 수 있는 육감으로 숯불을 피우는 아빠의 외로움을 알아챘다.”란 문장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위기를 견디고 이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산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무조건 참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에 뜬 그림자를 보다』속 화자는 많은 시간을 참았다. 도박에 빠진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살던 집을 날리고 경제적으로 무너졌지만 아이에게 아빠를 빼앗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남편은 아빠이기를 포기한 사람 같았다. 남편을 집을 떠났고, 이혼을 선택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간병인을 시작했다. 경력이 단절된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주말마다 만나는 아이와의 시간은 간절했고 이혼 사실을 모르는 어머니가 묻는 아들의 근황에 대해 답하기는 어려웠다. 엄마로 산다는 건 왜 이리 고달픈가.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내 마음의 파랑」과 어린 딸을 두고 떠날 수 없는 심경을 고스란히 전하는 「섬」의 엄마의 마음도 애달프다. 자식을 향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나’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삶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비혼 주의, 다양한 구성원의 가족,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 경험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 섣불리 누군가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숨은 눈』은 엄마, 아내,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이다. 다른 세대의 삶은 알고 싶지 않다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들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한다면 그들이 자신과 연결된 이들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선택하지 않는 시대. 사랑, 결혼, 가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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