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언니 - 언니들 앞에서라면 나는 마냥 철부지가 되어도 괜찮다 아무튼 시리즈 32
원도 지음 / 제철소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이었던 여성이 하나의 공통점으로 ‘우리’가 되자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11쪽)


‘아무튼 시리즈를 만나 건 잘한 일이다. 시리즈 전체를 다 만난 건 아니지만 내가 읽은 책들은 나쁘지 않았다. 어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튼 그냥 좋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는 사물과 존재들. 그런 대상이 내게도 있는지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원도의 『아무튼, 언니』를 읽으면서 나의 언니들, 나의 동생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언니가 된다는 것, 언니로 불리는 관계가 맺어진다는 건 친밀, 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그런 언니들이 있다. 혈연으로 맺어진 두 명의 언니를 포함한 나의 언니들. 또 나를 언니라 부르는 동생들. ‘언니’라는 말이 이렇게 달콤한 말이었던가. 


여느 에세이와 다르지 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아무튼, 언니』는 저자가 만난 언니들의 이야기다. 자신을 이끌어주고 지탱하며 함께 살아가는 언니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글이다. 경찰관인 저자가 중앙경찰학교에서 만난 세 명의 언니 (수홍, 시벨, 대장) 들과 함께 보낸 순간들, 그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신나게 수다를 떠는 듯 호쾌하고 유쾌한 문장에 빠져 어느 순간 함께 맥주를 마시고 어느 순간 함께 절망하고 행복해한다.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것들, 자신을 향한 세상의 시선들을 향한 솔직한 마음을 말한다. 같은 일을 하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사이, 서로에 대한 진심을 담은 격려와 응원이 저자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곳곳에서 전해진다. 세 명의 언니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책이라 할 수도 있다. 아, 이런 동생을 둔 언니들은 얼마나 뿌듯할까. 바쁜 스케줄을 맞춰 떠난 유럽 여행부터 힘들고 고단할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언니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그런 언니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이 절로 생긴다. 여자 경찰관 언니들이라니. 드라마 <라이브>가 생각나기도 했다. 


세 명의 언니들의 이야기가 다는 아니다. 친언니와의 관계, 경찰공무원 공부를 하면서 만난 언니, 학창 시절 우상이었던 언니, 엄마의 언니인 이모도 만날 수 있다. 그러니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언니들. 모두 좋은 언니가 될 수는 없지만 인생의 일부를 차지했던 언니들이다. 아픈 오빠로 인해 항상 힘들었던 엄마를 든든하게 지켜준 이모에 대한 이야기는 먹먹함을 몰고 온다. 돌아가신 나의 엄마와 이모는 어떤 사이였을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녀들의 유년시절이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바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나의 자매들. 오빠와 남동생과는 다른 남다른 유대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경찰관이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여성 경찰관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경찰관이 되려면 1종 보통과 그 이상의 대형 면허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쩌면 이 책은 여자 경찰관이 되려는 이들에게 진짜 좋은 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부분이다. 현장에 대한 이야기, 여자 경찰관에 대한 사회적 시선,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 사건 현장에서 만난 언니들에 대한 부분을 읽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죽음으로 마주한 언니들, 그녀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해주는 현장. 모든 잘못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인 여성에게 돌리고 운이 없어 그렇다고 말하는 세상을 향한 분노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완전히 돌아버려야만 똑바로 설 수 있는 팽이와 같은 세상에서 성실과 진심의 가치 따위, 씨알도 안 먹힐지 모른다. 이렇게 살아질 바엔 그냥 사라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 쓰러지지 말자. 우리가 맞잡은 손이 끝없이 이어져 언젠가는 기쁨의 원을 그릴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의 운이 되어주자. 세상이 심어준 혐오와 수치 대신 서로의 용기를 양분 삶아 앞으로 나가갈 우리는 설렁탕을 먹지 않아도 충분히 운수 좋은 날을 맞이할 것이다. (158쪽)


누군가의 언니에게, 언니의 동생들에게 힘들어도 지치지 말고 함께 살아가자고 손을 내미는 책이다. 언니가 있어 든든하고 좋다고, 나도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고 건네고 싶다. 공감과 연대로 하나가 되어 단단해진 우리를 기대하는 일이 신나고 기쁘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