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한 이들은 다투기도 한다. 서로의 기억이 많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오류이고 왜곡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아침 일찍, 그러니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혹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물어볼 게 있다면서 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특정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로 말했다. 그 기억은 대체로 친구와 비슷했다. 친구는 반색하면서 다른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이름만 아는 동창이었다. 그 아이도 나를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특정 선생님과 과목에 대한 기억은 학교 전체와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선생님은 무척 중요한 존재였다. 지금까지 교직에 계실까, 그때 왜 그렇게 무서웠을까. 대부분 초임 발령지였으니 젊고 어린 선생님들이셨다. 아련하고도 애틋한 순간을 나누고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추워진 날씨, 고장 난 밥솥( 주문을 했다),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엔 늘 그렇듯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고 말을 건넸다.


시선은 언제나 변화한다. 내 위치가 달려져서 그렇기도 하고 경험치가 쌓여서도 그렇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럴까.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잠깐 했다. 교육자라는 사명감 같은, 그리고 현재 나와 연결된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가 보다. 앙상한 가지만 남긴 나무 가운데 여태 꽃은 간직한 장미를 발견했는데 기분이 묘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이라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쉽다. 전혀 시들거나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덤빌 테면 덤벼하는 태도라고 할까. 요즘 같은 날들에는 그런 결연한 의지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똑같이 주어진 날들인데 12월은 뭔가 부족한 걸 채워야 할 것 같다. 올해의 책이나 무슨 결산 같은 걸 하는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업무의 목표나 달성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사소한 즐거움도 12월이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아직 한 달이나 남았으니 읽지 못했던 책도 읽고 읽고 싶은 책을 쟁여놔도 괜찮다는.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이 새로운 표지로 나왔다. 좋은 단편집이라고 소문냈던 책이다. 양장본이다.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채워볼까. 나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무로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아름다운 핑계이지 않은가. 메리 올리버의 시집 『천 개의 아침』, 최근에 읽은 에세이 때문일까, 주변에 좋다는 소문 때문일까 하루키의 단편집 『일인칭 단수』도 핑계 목록에 넣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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