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하는 마음 일하는 마음 3
양희 지음 / 제철소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에서 울컥하고 만다. 삶이라는 게 평탄하지 않다는 걸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힘겹다는 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의 궤적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해서다. 내가 볼 수 있는 삶과 나는 전혀 알 수 없는 삶을 보게 되는 것, 그게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단순하게 보면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일이다. 그런데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울림과 감동을 안겨준다. 다큐멘터리의 원동력은 어디서 발생하는 걸까. 양희의 인터뷰집 『다큐하는 마음』에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한때는 다큐멘터리는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지루했고 때로는 평범해서 매력이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EBS 국제다큐영화제’를 시청하면서 달라졌고 매년 기다렸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제작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감독이 촬영을 하고 섭외를 하고 모든 걸 다 한다고 여겼다. 배급사가 있고 홍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협회나 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얼마나 부족한가 이 책을 통해 조금 알게 되었다.


다큐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무엇을 그들을 다큐멘터리로 이끈 것일까. 양희가 만난 9명(감독, 프로듀서, 촬영감독, 편집감독, 비평가, 홍보마케터, 수입배급자, 영화제 사무국장, 영화제 집행위원장) 전해주는 그 마음을 알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무엇이 그들을 지탱하는지 알 것 같다.


다큐멘터리가 어떻게 시작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촬영하는지 몰랐다. 짧은 상영시간을 위해 몇 년을 찍는다는 게 놀라웠고 담아낸 그 모든 시간을 집약하고 촬영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는다는 작업이 얼마나 지난할까 생각했다. 상영할 수 있는 극장도 많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에겐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인식되고 있으니까.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그들이었다. 다큐멘터리는 내가 아닌 우리, 그리고 그 너머의 삶을 살피는 일이라고 느껴졌다. 인터뷰하는 이들에게 다큐멘터리는 직업이 될 수 없음에도 그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직업이라고 하면 그 일을 통해 생계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아요. 대신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다른 일을 해가면서 하죠.” 맞다. 시인이 전업작가로 살기 어려운 것처럼, 다큐멘터리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의 온갖 여린 것, 보드라운 것, 나약한 것, 힘없는 것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173쪽)


9명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며 다큐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런 부분이 특히 더 좋았다. 강유가람 감독의 시선, 이태원에서 세 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곳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그들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는 마음. 잘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는 일이 다큐가 시작되는 순간이구나 느꼈다.


“다큐멘터리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생각하게 해요. ‘나는 배우지 않으면 변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좀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또 그게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그게 제가 다큐멘터리를 계속하는 마음이에요.” (74쪽, 감독 강유가람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좋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관객과 만나는 창구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고 비평하는 비평가의 역할도 꼭 필요하다.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서 닮은 점을 찾고 다른 걸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인터뷰어 양희의 말처럼 비평가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각자의 자리뿐 아니라, 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함께 바라보고 대화할 때 우리는 타인의 삶을 내 삶으로 치환시킬 수 있다. 어쩌면 비평가는 다큐멘터리와 관객을 이어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세상과 현실에 다리를 놓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182쪽)


가장 최근에 내가 본 다큐멘터리는 세월호의 기억을 다룬 「부재의 기억」으로 그 잔상이 오래 남았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이다. 방송사에서 편성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작품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되어 무척 남다르게 다가온다.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그럴 것이다. <우리 학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작품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에 담긴 수많은 이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그들에게 다큐멘터리가 직업이 될 수 있는 환경이 빨리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이제까지 몰랐던 다큐의 세계와 다큐하는 마음이 내게로 전해졌다.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할 진실과 기록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많은 이들의 수고와 노력이 모여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그러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힘, 그게 다큐멘터리의 힘이다. 다큐하는 마음에 나 같은 독자의 마음까지 합쳐진다면 더 큰 힘을 발휘할 거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