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 시인선 336
김행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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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늦은 시각에 방영하는 프로를 즐겨 시청했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작가가 나오기도 했고 배우나 성우가 등장해서 책을 읽어주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디오북의 원조라고 할까.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최근 생각나는 프로 「요즘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가 가장 비슷할 것 같다. 그 시절 나는 그 방송을 통해 몰랐던 시인과 작가를 만났다. 시인 김행숙도 그러했다. 『타인의 의미』를 구매했고 그 안에서 「목의 위치」란 시를 많이 읽었다

김행숙의 시는 내게는 좀 난해하고 어렵지만 그냥 이상하게 끌린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그녀의 시집을 나는 다시 방송을 통해 구매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독립영화에 나온 그녀의 시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다정함의 세계」로 『이별의 능력』이란 시집이다. 창피한 일이지만 이 시집은 구매했다가 정리한 이력을 지녔다. 결국엔 재구매로 이어진다. 아, 시집은 정리하지 말라고 누가 그랬는데. 다정함의 세계라니,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면 당장 그곳으로 가고 싶다. 영화 속 사춘기 소년, 소녀의 감정과 잘 어울리는 시였다.

이곳에서 발이 녹는다

무릎이 없어지고,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괜찮아요, 작은 목소리는 더 작은 목소리가 되어

우리는 때때로 희미해진다

고마워요, 그 둥근 입술과 함께

작별 인사를 위해 무늬를 만들었던 몇 가지의 손짓과

안녕,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투명해지는 한쪽 귀와

수평선처럼 누워 있는 세계에서

검은 돌고래가 솟구쳐 오를 때

무릎이 반짝일 때

우리는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간다 (「다정함의 세계」, 전문)


시를 만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잠깐 등장하는 시가 반가운 이유로 그렇다. 그러나 내심 바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시인의 시가 아닌 시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너무 큰 욕심일까. 하긴, 나만 알고 싶은 시도 있으니 그건 또 다른 욕심일 것이다. 김행숙의 시집에서 이런 시도 오래 읽었다.


발이 보이지 않게 달리기를 하지요, 점점 빠르게.

아아아 느리게. 마지막 숨결은 얼마나 멀리 있는 걸까요? 가까운 듯,

나는 달리기예요. 오른발 다음에 왼발, 모레 새벽에는 국경을 넘게 되지요.

총성이 까마귀 울음소리보다 자주 들리는 곳,

이곳에서는 점치는 여인들만이늙어서 죽습니다.

탕, 탕, 탕,

총알을 피하듯, 나쁜 음식과 나쁜 꿈을 피했습니다.

지금은 말이야, 가족이 만들어지는 혼돈의 밤을 정

리하기 위해 세 번째 총성이 너의 귀를 흔드는 시각, ,

눈을 흐리게 하고, 탕! 거울 앞에서 서보 아라. 노파는, 탕! 거울 앞에서 서보아라.

노파는 혼례복을 입은 손녀를 불러 마주하였습니다.

아름답구나, 처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십 년 후, 왼발 다음에 오른발, 나는 달리기예요.

오른발 다음에 왼발, 세월은 보이지 않아요.

나는 지나갔어요. 가장 슬픔 마음도 나를 붙잡지 못해요. (「세월」, 전문)

우리는 오늘도 왼발 다음에 오른발, 구령을 외치며 달리는 건 아닐까. 무엇을 피하고 싶은 것일까. 두려움과 고통을 피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빨리빨리 빠르게 달려서 그것들을 지나간다면 한숨을 돌릴 수 있을까. 이어달리기를 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 누가 나를 이어 달려줄 수 있을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주자,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는 마음은 심각하게 슬프다. 슬픔 마음을 달래는 건 이런 시를 읽는 일.


며칠 늦게 일요일이 찾아왔다. 햇빛은 일요일의 뒤에 있었고,

몇 덩어리의 구름은 일요일의 느리고 느리고 부드러운 말씨,

그리고 내린 비는 일요일의 가득한 눈물처럼, 앞에 있는 햇빛처럼.

나는 토요일 밤의 송별회를 지나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 밤,

나쁜 일은 영원히 생기기 않을 것 같은 날들이 멀리 흐르지 않고 가까이 향월 여인숙에서 잠이 들고 다음 날 다시 새 이불을 덮는다.

나는 화요일 밤을 지나 수요일 아침 그리고 목요일 아침 순서로 일요일을 기다린다.

일요일은 제멋대로 다리를 뻗고 두드리고 발을 주무른다. 일요일이 쓰고 온 넓은 모자가 넓은 그늘을 만들고, 나는 금요일 저녁에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구두들이 글썽거리며 웃음을 물고 모여 있는 것을 본다. 금요일 저녁에서

발이 녹는다. 발부터 일요일까지. 토요일이라는 누구누구의 이름까지. (「일요일」, 전문)

오늘은 월요일이고, 일요일은 어제 지나갔다. 내가 보낸 일요일은 어떤 풍경인지 잠깐 어제, 일요일을 그려본다. 예배를 드리고 낮잠을 자기도 하는 시간, 일요일까지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다. 김행숙의 시는 매력적이다. 그 매력에 빠져든다면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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