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봄 2019 소설 보다
김수온.백수린.장희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겐 저마다의 고유한 언어가 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다. 문장 안에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따라 다르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고저에 따라 다른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고유한 분위기라고 해도 좋을까. 소설가에게 그것은 문체가 될 것이다. 번역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만나는 한국문학을 더 많이 읽는 내게 문체와 분위기는 아주 중요하게 다가온다. 거대한 서사, 정확하고 놀라운 자료 수집에도 놀라지만 매력적으로 이끄는 건 그런 것이다. 『소설 보다 : 봄 2019』를 읽으면서 더욱 그랬다.


 ‘도시의 서쪽에는 숲이 있다. 나무가 우거져 있으므로 그늘이다. 숲에 작은 면적의 호수가 있다. 거기 유일한 빛이 비추고 있어.’ 란 문장만으로도 김수온의 「한 폭의 빛」은 작가의 등단작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상실과 애도, 그리고 물이라는 이미지. 몽환적인 분위기는 절망과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상황만으로도 소설 속 그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녀의 집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손수건, 물, 연기, 그러한 단어가 간직한 신비한 슬픔이 달려든다.

백수린은 단편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에서 기존의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과감함을 선보인다. 그러니까 이 과감함이라는 건 욕망을 표출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도발적인 분위기를 엿보이는 제목처럼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희주가 겪는 내면의 변화를 설명하는 게 아닐까 싶다. 희주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붉은 벽돌집’이 상징하는 행복 혹은 안온한 삶이 가능할까. 과격한 표현이나 대화 없이도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백수린의 방식이 탁월하다.

장희원의 「우리의 환대」는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해한다는 말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기대는 항상 차고 넘친다.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옳은 것일까? 3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호주에 온 부모의 기대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의 일상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차마 집이라 할 수 없는 공간과 흑인 노인과 문신을 한 여자애와 살고 있는 아들을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도 힘겹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긍정할 수 있지만 내 아이는 그럴 수 없다는 마음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가족은 이미 해체되었다. 삶의 방식도 빠르게 변화한다. 가장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느낀다.


김수온, 백수린, 장희원 세 명 모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통해 내가 몰랐던 세상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아서 외면했을지도 모르는 모습이다. 그것이 소설의 순기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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