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유주얼 an usual Magazine Vol.8 : Out 퇴근 퇴사 퇴짜
은유 외 지음 / 언유주얼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읽는 즐거움이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읽고 뭔가를 기록해야 한다는 것. 처음에는 자발적인 기록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즐거움이 아닌 의무로 전락되었다. 그런 경우 글에는 자유로움이 사라진다. 감정도 사라진다. 그걸 느낄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언유주얼」8호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글을 쓰고 자유롭게 사는 삶. 그러니까 주체적인 삶 말이다. 어쩌면 이번 호의 키워드가 퇴근, 퇴사, 퇴짜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퇴근의 즐거움, 퇴사의 후련함, 퇴짜의 상처라고 말할까. 직장인이 출근과 동시에 가장 바라는 시간은 퇴근일 것이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상사는 얼마나 얄미울까. 일정한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에게 퇴근 시간은 정해진 것일까. 잡지의 특성상 글과 그림, 사진, 만화, 다양한 필진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지만 가장 먼저 챙겨서 본 건 역시 활자였다.


에세이와 짧은 소설을 읽는 일은 즐거웠다. 키워드와 상관없이 편하게 다가오는 글. 어쩌면 퇴근, 퇴사, 퇴짜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 은유 작가가 말하듯 쓰지 않아도 어디를 가든 노트북을 챙기고 항상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서는 원고 걱정을 하는 게 프리랜서의 숙명일 것이다. 업무에 대한 전화나 메일을 무조건 수용할 수 없어 고민하는 이라면 이랑 작가처럼 메일 관리자를 두는 일도 괜찮을 듯하다. 그 메일 관리자가 또 다른 자신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비밀이겠지만 말이다.


퇴짜의 경험은 고백으로 시작된다. 사실상 거절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면서도 유연하고도 완곡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정중하게 고마움 마음이지만 현재의 사이로 만족하며 지내자는 말은 상대에게 가장 아픈 답이 된다. 반대의 경우라면 표정 관리를 해야 하고 튀어나오는 진심을 숨겨야 한다. 타인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배우의 시선으로 퇴짜를 말하는 최희서의 인터뷰에서는 진솔함이 전해졌다. 원하는 배역을 선택할 수 있기까지 수많은 퇴짜가 받아들이는 일이 배우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배우가 오디션을 봐서 떨어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퇴짜를 오로지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퇴짜 한 번에는 너무나도 많은 이유가 있으니까요. 불안감을 이길 방법은 없어요. 받아들이고 함께 공존하는 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100쪽)


매일 글을 쓰는 이슬아의 글과 일기를 쓰고 춤을 출 때만 숨을 쉴 수 있다는 시인 문보영의 글을 읽으면서 나를 살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을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지난 삶을 돌아본다. 때로 무기력하게 보낸 시간과 무작정 읽기만 했던 시간을 지나 지금 현재의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누군가의 퇴근길을 포착한 사진에서 고단함이 전해진다. 그가 아무런 구속 없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얼른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수없이 접속하는 인터넷 세상과 이별하고 가만히 취할 수 있는 그림과 사진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말 없는 위로가 된다. 그리고 한동안 떠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태도를 취하라는 오찬호의 글. 어떤 상처도 주지 않고 받지 않는 그런 거절. 군더더기를 뺀 담백하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일. 그게 가장 최선일 것 같다.


괜한 말들이 섞이지 않는 무미건조한 거절, 딱 그것만 하시면 됩니다. (137쪽)


살아가는 동안 얼마의 퇴근과 몇 번의 퇴사와 퇴짜가 남았을까. 그런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산다면 하루를 견디는 것도 어렵다. 때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계산도 없이 그냥 사는 게 가장 현명하다. 퇴근과 동시에 출근을 걱정하지 말고 퇴근한 당신은 맘껏 즐기고, 퇴사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으니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는 용기를 쌓아가길. 누군가 퇴짜의 경험으로 주눅 들고 도전하지 못한다면 나를 알아보지 못한 상대의 안목이 너무 낮다는 것만 기억하길. 그리고 이렇게 다채로운 볼거리, 읽을거리의 잡지로 시선을 돌려봐도 좋겠다. 내 맘대로 골라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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