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 장혜령 소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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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이야기이자 모두에게 말하고 싶은 그것이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시작하면 끝을 맺을 수 있을까. 누가 하찮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까 고민하고 고민한다. 누군가는 그런 상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면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도 주저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내 안에 갇힌 이야기는 진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장혜령의 『진주』도 그런 마음이 쌓여서 시작된 건 아닐까.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한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느꼈을 상처와 슬픔, ‘훌륭한 아버지’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설명하지 하지 않았던 선생님과 어른들. 그리고 묵묵히 삶을 견디며 딸을 키우는 어머니. 이제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진짜 삶이었던 어린 소녀가 자라 들려주는 나직한 목소리로 가만히 들려주는 소설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소설을 쉽게 읽을 수가 없었다. 소설의 형식이나 구성 때문이 아니었다. 화자인 ‘나’ 와 다른 시대와 다른 공간에 거주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분명 다른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의 주변에도 분명 존재했을 수많은 어린 ‘나’와 그의 가족들의 존재를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알았더라도 소설 속 아이들처럼 ‘너는 왜 아빠가 없냐’고 묻는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여전히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세상과 불화하는 이들이 여전한 지금도 다르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부재로 존재하는 아버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나’에게 가능했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의 일기, 그러니까 작가 장혜령의 일기에는 아빠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어린 소녀가 느꼈을 불안이 고스란히 담겼다. 잠들 때 엄마 손을 꼭 잡고 자자고 말하는 ‘나’의 간절함이 전해진다. 그러나 대답은 그러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너무도 할 일이 많은 엄마는 아침이면 깨끗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이미 일을 하고 있다.

 

‘나’의 기억으로 시작했을 이야기. 기억은 얼마나 정확한가. 그 많은 일기들과 그림, 사진을 간직했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이스크림을 사 오라며 돈을 건넨 사복 경찰과의 만남, 가게를 나오는 소녀의 등 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동네 아줌마들,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가족들과 지냈던 안산에서의 기억, 아버지가 부재한 이들이 함께 명절을 지내며 서로를 위로하던 날들, 언제부터 소녀는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던 것일까.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현장에 있었던 아버지. 집이 아닌 거리에 있었고 경찰을 피해 다니고 결국엔 감옥에서 지냈던 아버지.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돌아왔고 아버지가 감옥에서 삶을 견디는 동안 아버지의 동료들 가운데 우리가 알만한 누군가는 교수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사업가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마치 과거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 기준은 누가 세우는가. 돌아온 아버지도 생의 현장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대학 졸업장 대신 전과자가 된 아버지는 남들처럼 회사에 다닐 수 없다. 친구나 지인의 소개로 들어간 회사에서도 여전히 주변을 돌아보고 뒤를 돌아본다. 부당한 대우, 체불된 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그것들을 묵과할 수가 없다. 다시 그렇게 아버지는 방 안으로 돌아와 식물처럼 조용히 지낸다. 그러나 딸에게는 자전거를 가르치며 돌아보지 말라고 공집합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어둡고 무서운 곳인데 자전거 타는 작은 일부터 두려워한다면 살아갈 수 없다고(12쪽)’ , ‘돌아보지 말아라.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갈 때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라고(100쪽)’ 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딸은 짐작할 뿐이다.

아버지가 앞으로 나가는 대신 돌아본 세상엔 보통의 우리가 있었다. 기간제, 계약직, 임시직의 우리들 말이다. 시대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하게 지속되는 고단한 삶. 소설 속 아버지는 여전히 거리에서 투쟁하고 단식하고 언론에 등장한다. 과거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당장 자기가 사는 시대가 바뀌지 않더라도 지금의 어린이들이 어른이 된 미래에는, 자신들이 꿈꾸던 세계가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78쪽)’ 모두에게 괜찮은 세상, 악의보다는 선의가 가득한 세상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소설은 ‘나’처럼 아버지의 부재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된 어린아이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역사 속 저편에 기록으로 남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고 살아내는 이들에게 『진주』는 소설이 아닌 그들의 기록이자 일상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부끄럽고 불편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가 더듬어가는 기억 속 반려견과 보내는 잔잔한 일상과 진주의 풍경에서 어떤 평안과 평화를 느낀다. 참으로 이상한 감정이다. 아버지가 옥살이를 하던 도시 ‘진주’를 가기 위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멀미를 했던 열 살의 ‘나’는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서른둘의 나이에 다시 그 진주를 찾는다. 엄마와 함께 짧은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먹었던 국수, 진주의 볼거리와 먹거리를 소개하는 이들의 말투와 표정, 일요일에는 면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 아득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때로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으로 응집된다. 장혜령의 『진주』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당사자인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남편을 믿고 기다리고 지원하는 아내와 그의 딸이 살아낸 시간의 기록이라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누구도 대신 채울 수 없던 아버지의 자리, 부재로 자신을 증명하던 아버지를 세상에 공개한 것이다. 그렇게 작가 장혜령이 혼자만 간직했던 이야기의 타래가 술술 풀려서 나에게 닿는 순간의 감정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싶다. 소설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흘러가는지 지켜볼 것이다. 구르고 굴러 커진 소설의 힘이 닿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말이다. 이제 『진주』를 만나는 모든 이들은 스스로가 하나의 운동장이 될 것이며 그곳에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면서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을 응원할 것이다. 그가 뒤돌아보면 손을 흔들고, 넘어지면 달려가 일으켜주고. 마침내 그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즐거움과 소소한 풍경이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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