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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에드워드 캐리 지음, 공경희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특별하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을까. 저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돌이켜보면 누군가 곁에 있었기에 살아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 미움의 상대였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마리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마리는 알자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마리는 보통의 아이와 달랐다. 아주 작은 아이였다. 책 제목인 little과 표지처럼 말이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전쟁에서 돌아왔지만 곧 죽었고 어머니는 가정부로 일하는 집에서 마리 옆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여섯 살 소녀는 그렇게 고아가 되었다. 그러니 집 주인인 ‘닥터 쿠르티우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쿠르티우스는 의사였지만 사람을 진료하는 대신 모든 인체 기관의 모형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는 해부 모형 제작자였고 병원에서 필요로 하는 몸을 일부를 밀랍으로 만들었다. 마리는 이제 그를 도와 밀랍을 만드는 제자가 되었다. 쿠르티우스는 마리를 밀랍으로 만들었다. 마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시작한 것이다. 마리의 두상을 보고 많은 이들이 자신의 두상을 만들기를 원했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쿠르티우스의 소문은 파리까지 퍼져 당시의 유명 인사가 그를 찾아오고 파리에서 활동하기를 권유한다. 쿠르티우스와 마리는 파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들이 살게 된 집에는 재봉사 남편을 잃은 과부와 아들 에드몽의 살고 있었다. 과부는 대놓고 마리를 무시했고 쿠르티우스는 그런 과부에게 빠져들었다. 과부는 쿠르티우스가 만든 밀랍을 보고 사업을 구상한다. ‘닥터 쿠르티우스의 캐비닛’이란 이름은 금세 유명해졌다. 유명 인사의 밀랍을 만들고 관람료를 받는 것이다. 쿠르티우스를 도와 모든 일을 하는 마리를 그들은 하녀로 삼았다. 마리는 주인까지 자신을 저버려 속상했지만 그 모든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든 생각과 감정을 안전한 내면 깊숙한 곳에 넣었지만, 겉으로는 자동인형처럼 되었다. 그들의 지시가 내 태엽을 감으면, 나는 기계적이지만 완벽하게 지시에 따랐다. 살 기회를 얻으려고 입을 다물고 하녀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그들이 다른 곳에 있을 때면, 나 자신을 불러내서 다시 마리답게 되었다. 여전히 마리였다. (160쪽)
돈과 명예가 있는 이들은 자신의 밀랍을 만들었고 과부의 사업은 번창했고 쿠르티우스는 살아있는 이들이 아닌 죽은 자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만든 데스마스크에 파리의 사람들은 더욱 열광했다. 그러는 사이 마리는 에드몽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과부는 부와 권력을 얻는 방법으로 아들의 결혼을 이용했다. 마리와 에드몽 모두에게 슬픔이었다. 이쯤에서 프랑스 파리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바야흐로 루이 16세의 시대였다. 파리의 모든 이들이 쿠르티우스를 알았으니 당연 궁정에서도 그를 찾아왔으니 바로 루이 16세의 누이 열네 살 엘리자베트 공주였다. 키가 148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그녀는 열일곱 살 마리와 똑같았고 밀랍에 관심을 보였다. 마리는 공주의 조각 교사로 궁에 들어가게 되었고 스승과 과부는 마리에게 왕과 왕비의 밀랍을 원했다.
서로를 알아본 공주와 마리는 한 몸처럼 지냈지만 그녀의 숙소는 찬장 선반이었다. 공주를 제외한 사람들은 여전히 마리를 하녀로 대했다. 그래도 궁전을 구경할 수 있었고 자물쇠공을 만나 친구가 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이자 루이 16세였다. 운 좋게 마리는 왕의 실물을 본뜬 모형을 만들었고 왕실 가족 모두를 스케치할 수 있었다. 그랬다. 그것으로 인해 궁정에서 쫓겨나고 과부와 스승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건 마리뿐이 아니었다. 불행한 결혼의 결과로 에드몽은 다락방에서 홀로 지냈다.
그 시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고 파리에는 피바람이 분다. 불안과 공포가 도시를 감싸는 와중에도 마리와 에드몽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하지만 왕족의 두상이 발견되고 마리와 스승과 과부는 감옥으로 끌려간다. 아이를 가진 마리는 죽음을 면했지만 과부는 처형 당했다. 에드몽의 죽음과 사산된 아이, 마리에게는 가혹한 운명이었다. 스승과 재기를 꿈꿨지만 그 역시 빚을 유산하고 떠났다. 혼자 남은 마리는 버틸 수가 없어 결혼을 선택했지만 허황된 꿈만 꾸고 돈만 요구하는 남편과의 시간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오직 두 아들만이 희망이었다. 하지만 삶이란 반전이 있기에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옥에서 만난 로즈라는 여인으로 인해 알게 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의 밀랍상을 확보한 후 남편과 이혼했고 마리는 런던으로 향했다. 아들 하나를 프랑스에 두고 떠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런던에서 마리는 자신의 재능을 펼쳤고 성공했다. 모두에게 ‘리틀’이라 불리는 마리는 프랑스 역사의 한 장면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기록한 사람이었다.
소설은 1761년에 태어난 마리가 1850년 죽음을 맞기까지의 인생을 들려준다. 고아이자 하녀였던 그녀가 겪은 프랑스 혁명처럼 그녀의 인생 자체도 혁명과 같았다.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 주인을 따랐고 그에게 배운 재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타인의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 주체적으로 살기를 원했고 그렇게 살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 인형들만 나를 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상태, 그것을 밀랍상이라고 부른다. (623쪽)
한 사람의 생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그가 살아온 삶이 곳 역사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리틀』은 역사소설이자 밀랍 박물관의 창시자인 마담 투소를 그린 전기소설(傳記小說)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쓰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소설을 통해 모두의 삶이 귀하고 특별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