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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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서로의 일상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상대를 우리는 친구라고 한다. 그런 친구와 갑자기 서먹해진다면 상처를 받았다고 여긴다. 친구의 사정도 모르면서 친구라는 관계에 그 모든 걸 넣어두려고 하는 것이다. 그건 나만의 일방적인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니까 그래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나에게 좋은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무조건 지지를 건네는 그런 사람일까. 그럼 나는 어떤 친구일까. 상대에게 좋은 친구인 건 맞는 걸까. 윤이형의 『붕대 감기』는 내게 자꾸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친구입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말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일 것 같지만 실상 나에 대해 아는 건 친구일 때가 있다. 내가 무얼 좋아했는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나의 말을 들어주고 지켜봐 줬으므로.

 

모든 관계에는 처음이 있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누군가 먼저 다가가고 누군가 먼저 기다리는 일이 필요하다. 관계의 깊이가 누적된 시간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둘 사이를 오가는 시간과 말들, 어떤 사건들이 어떻게 견디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다. 소설에서 진경과 세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진경과 세연은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닿았다. 다시 만난 설렘과 기대로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고 공유하고 의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둘의 표현 방식은 다르다. 7살 딸을 둔 워킹맘 진경과 프리랜서인 세연의 삶이 다르듯 말이다.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온라인으로 이어져 있다고 믿었지만 자신의 글에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는 세연에게 진경은 서운함을 느낀다.

 

어쩌면 둘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진경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고 그런 삶의 고단함을 세연과 나누면서 공감하고 싶었다. 여성의 우정에 대해 취재를 하고 글을 쓰는 세연에게 진경이 속한 결혼과 육아의 세상은 경험할 수 없기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곳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생각의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모두가 애써서 살고 있잖아.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다 잘못된 거야? 너는 그 사람들처럼, 나처럼 될까 봐 두려운 거지. 왜 걱정하는 거니, 너는 자유롭고, 우리처럼 되지 않을 텐데.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나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154쪽)

 

마음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그 본질까지 다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진경과 세연 둘 만을 놓고 보면 진경은 개인과 일상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고 세연은 그들이 속한 사회와 세상으로 나가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인생에 있어 다른 선택을 했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니까. 그렇다고 둘 사이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접하는 세상, 그들이 맺은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에서 따로 떼어낼 수 있을까. 세연이 글을 쓰기 위해 만난 10대와 20대의 여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같은 시대를 살고 세상에 속해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당당하면서도 거침없는 10대, 20대가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조금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40대, 50대는 공감할 수 있고,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우정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 모두가 저마다의 고민으로 힘들어가고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은 서로에게 긴밀하게 연결되기를 원한다.

 

고교시절 교련 시간에 붕대 감기를 잘 몰라서 진경의 머리에 한 번 더 감아버린 세연처럼 우리는 실수한다. 피부 문제로 인해 화장을 고집했던 세연을 문제아로 여기고 따돌린 무리 속에 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번복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니 나와 다른 모두를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마음 때문에 아프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힘들다.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에 우리는 그 마음을 사랑하는 건 아닐까.

 

‘마음을 끝까지 열어 보이는 일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무참하고 누추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 많지만, 실망 뒤에 더 단단해지는 신뢰를 지켜본 일도, 끝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마음을 받아 본 일도 있는 나는 다름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꿈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더 알고 싶은 마음, 더 닿고 싶은 마음의 주인들과 오래오래 사랑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바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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