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브룩 노엘.패멀라 D. 블레어 지음, 배승민.이지현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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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겪는 당신만의 길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1쪽)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란 제목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이 책을 기대했던 이유,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 말이다. 저마다의 속도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소중한 이가 슬픔에 빠졌을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말을 걸기도 하고, 음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가만히 곁을 지키기도 한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몸이 아파 병원에 있을 때, 분명 그들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영원한 작별을 한 상태에서는 다르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기에 말이다. 애도의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애도의 상태는 같을 수 없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한 번도 학습한 적이 없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주 멀리 있는 막연한 것이었고 노년 후에나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은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삶의 일부였고 어떤 이에게만 닥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언제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친절하고 아주 상세하다. 여러 형태의 죽음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저자가 애도의 시간을 경험했고 모임을 갖고 상담을 하는 이들이기에 가능하다. 친구처럼 지냈던 전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패멀라 D. 블레어와 사고로 오빠를 잃은 브룩 노엘은 현실적이며 실천 가능한 조언을 한다. 가장 가까운 이(배우자, 부모, 형제, 자식)을 떠나보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애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사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직장으로의 복귀도 힘들고 소소한 일상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의 속도’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니 이런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 건 좋은 방법이다.

누군가 “이제 네 삶을 살아야 할 시간이야”라는 말을 한다면 당신은 “내 시간과 신의 시간이지 당신의 시간이 아니야”라고 답할 권한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완전히 받아들여 겪으면, 변혁을 시작하는 내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86쪽)

애도의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아주 오랜 시간 고인을 추억하는 일,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 고인의 물건을 주변 이들에게 나눠주는 일,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일도 모두 애도라는 걸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우리가 놓치는 것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애도를 표할지, 어떻게 애도에 접근할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특히, 가족을 잃고 기념일이나 명절을 보내야 할 때 느끼는 감정이나 대처법, 아이들의 애도 돕기가 그러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슬픔에 빠져 주변 가족의 상태를 진단하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아기, 유아기, 성장기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다는 걸 알지 못한다. 무조건 하늘나라에 갔다거나, 잠자는 거라고 죽음에 설명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연령에 따라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알려준다. 이 책이 진심을 다해 애도를 돕고 위로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죽음의 형태와 고인과의 관계에 따른 슬픔에 대해서도 언급했기 때문이다. 대형 참사, 자살,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죽음 등 낯설면서도 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에 대해서.

길고 느린 과정이에요. 때때로 두 걸음 앞으로 나가갈 때마다 세 걸음 뒤로 물러나요. 하지만 다른 때에는 후퇴 없이 앞으로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계속해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고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제가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한 걸음씩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303쪽)

 

우리는 저마다 고통과 상실의 시간과 마주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생은 없다. 애도는 삶의 일부가 되며 그것의 끝은 없다. 아니, 어떤 이에게는 그 끝이 존재할 수도 있다. 저마다 다르니까. 우리는 그저 애도하며 살아갈 뿐이다. 어떤 날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어떤 날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이 책을 만났다고 해서 애도를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저 조금 더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으며 어떻게 애도할 수 있는지 배웠을 뿐이다. 분명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아직은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이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북받쳐오는 감정 때문에 조금 울컥했다. 내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 생각났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얼굴을 떠올렸다. 가장 그리운 엄마의 얼굴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 나만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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