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와 연락이 끊긴 지 3년째다. 2017년 초, 1년을 목표로 봉사와 공부를 하려고 해외로 떠난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면 “고객의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금지되었다"라는 친절한 안내 멘트가 나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일에, 명절에 문자를 보낸다. 문자가 도착했을지, 그녀가 확인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냥 그렇게 안부를 전한다. 떠나기 전 우리는 만났고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녹차를 마셨다. 그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며, 이곳은 춥거나 덥다고 나는 잘 지낸다고, 보고 싶다고 그런 말들을 쓰면서 어쩌면 그녀가 돌아온 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나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는,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럴 때면 나는 우울해진다. 우리가 함께 보낸 순간, 시간들이 떠올라서,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다 내가 진짜 H를 잘 알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든다. 누군가를 아는 게 진정 가능한가 싶은 거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나를 전부 보여준 게 맞나 싶다. 숨김없이 그녀와 소통하고 있었던가. 그녀와 내가 보낸 문자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서로의 가족사를 털어놓고 속상했던 일상을 말하고 어떻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 마음의 한구석에 자리한 감정의 공간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했던 말들을 나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 손보미의 『디어 랄프 로렌』속 종수가 수영이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어떤 마음. 나도 H에게 그랬던 건 아닐까. 책장을 정리하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H가 병문안을 다녀가면서 전한 메모를 발견했다. “언니”로 시작하는 고운 손글씨로 나를 걱정하던 편지에 그녀의 말간 눈동자가 담겨 있었다. 소설은 종수가 랄프 로렌의 생애를 추적하는 내용이지만 결국엔 종수와 그를 둘러싼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켜보고 그를 인정하는 태도에 관한 소설. 한국의 학창시절에 랄프 로렌에게 보낼 편지를 쓰던 수영이 종수를 향했던 마음, 미국 대학원에서 지도교수가 전한 조언, 기숙사 친구의 위로와 진심, 랄프 로렌에 생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나 데이트를 했던 섀년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더 알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그들과 나눈 녹취록을 들으면서 자신이 뒤늦게 발견한 마음들은 누구에게나 속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친구는 내가 학교에 안 나간 후부터 내 집 문을 두드렸어요. 노크 말이에요. 누군가 내 집 문을 노크해줬죠. 섀넌, 나는 그걸 계속 비웃었지만. 이제는 비웃는 걸 그만해야 할까 봐요. 섀넌, 이 세상의 누군가는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거예요. 그냥 잘 들으려고 노력만 하면 돼요. 그냥 당신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돼요.” (본문 중에서)

한 사람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순간 두려워진다. 돌이켰을 때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나를 향한 노크를 놓치지 말고 곁에서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문을 활짝 열어 반기지는 못하더라도. 종수가 섀년에게 건네는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H의 문을 노트하는 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나는 H가 나를 노크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내는 문자는 그녀가 제발 내게 답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안내 멘트가 아닌 목소리로 나의 전화를 받아주기를 바라고 바랐다. 나를 언니라 불러주는 소중한 사람, 나는 그녀의 마음 가까운 곳에 닿고 싶었지만 그런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마도 나는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걸.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좀 더 멀어질 수도 있고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그녀와 내가 나눈 이야기를 되짚어본다. 그녀는 상담을 공부했고 그에 관련된 일을 했다.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평범한 삶의 범주보다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았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가장 기본인 일이었다. 우리는 종종 정치나 사회의 이슈에 대해서도 말을 나눴는데 적극적인 그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환경을 핑계 삼았다고 할까. 아니 관심이 적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다. 나와는 멀리 떨어진 세상이라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선거, 투표, 촛불 집회에 대해서도 나의 마음은 그녀에 그것에 비해 무척 작고 얕았다. 

그녀가 자신의 영역에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가만히 그 행동을 지켜보고 지지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런 그녀가 자랑스러웠고 내가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런 마음을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를 통해서 더 많이 만났다. H랑 이 소설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면서 지방으로 내려간 H는 육아를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대학원에 다니고 논문을 준비하고 일을 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가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다. 출장을 다니는 그 길이 작은 여유라고 말했다. 그 자동차 덕분에 4시간 동안 운전을 해 내가 있는 소읍에 도착해 만나기도 했다. 윤이형의 단편 속 인물 면면이 그녀와 닮아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피클 단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속의 이것들이 우리죠. 혐오와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서, 나 혼자 아무리 올곧게 살겠다고 마음먹어도 물들지 않기가 쉽지 않아요.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단편, 「피클」중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했으니까요. 세상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살기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저는 다른 사랑을 발명했어요.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사람이 적어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혐오를 사랑할 수는 없어요. 혐오하는 사람들한테 우린, 소음이나 먼지나 비닐 같은 것밖에 안 되겠죠.” (단편, 「님프들」중에서)

그녀가 바라는 든든한 연대와 공감을 보았다는 게 맞겠다.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더 섬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던 그녀. 소설 속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 성을 바꿔서라도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 작은 움직임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모든 게 그녀의 모습처럼 보였다. 소설 속 상황은 우리의 현실이었고 그 안에 나와 H도 살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할까.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을 원했고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 했고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종종 말했던 H. 그녀를 응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떠나지 않기를,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다.

 

나는 지금 H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지낼 수도 있다. 이런 상상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에 돌아와 어딘가에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난 낯선 타국의 지명을 검색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그녀 스스로 잘 살아내고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나의 H만이 아니라 수많은 그녀들이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고. 어떤 형태로든 서로가 연대하고 환대하며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여형의 감상이라 여겼던 김영하의『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H가 참 반가워할 책이 아닐까 싶었다. 가장 근원적인 삶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었기에. 생의 터닝 포인트를 위해 떠나야 했던, 떠날 수밖에 없었던 H를 이해하는 글 같아서다. 해내야 할 것들이 많은 현실에서 벗어나 조금은 단조로운 일상을 원했던 건 아닐까, 이제야 생각한다. H는 일과 업무로 맺었던 복잡한 관계에서 잠시 내려와 쉬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내가 안다고 믿었던 무게보다 훨씬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던 그녀의 삶의 무게. 떠나는 것은 진정 옳았다. 돌아오기를 위한 떠남이 아닐지라도. 김영하의 말처럼 그녀도 나도 여행자일 것이다. 다만 여행하는 곳의 방향이 다르고 여행의 이유가 다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본문 중에서)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절이 있다는 말. H와 나 사이의 인연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읽은 이 책들을 함께 읽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H를 그리워하는 걸 그녀는 온전히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을 꿈꾼다. 그녀가 돌아오면 그녀를 예전보다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멀어졌던 시간만큼 더 가까워졌을 것 같은 유쾌한 착각. 연말을 잘 보내라고, 새해에도 많이 웃고 건강하라고 나는 H에게 문자를 전송한다. 열 개의 번호를 꾹꾹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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