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씩 종말에 대해 생각한다. 자연재해 같은 대재앙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세상이 끝나는 날은 어떻게 올까, 궁금하다. 지난 세기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존재하지 않는 먼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까. 냉동인간이 가능해지고 늘어나는 수명을 즐길 수 있도록 모든 일은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만병통치약이 등장할지 알 수 없다. 아니, 반대로 무서운 질병에 빠른 속도로 퍼져 손을 쓸 사이도 없이 모두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가장 무서운 게 바이러스라는 말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고, 우주가 폭발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럼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서 세계 어딘가에서는 뭔가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저스틴 크로닌의 『패시지』에서 미국 정부가 세상의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완벽한 백신을 연구하는 것도 그런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너무도 놀랍고 잔인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말이다.

 

소설은 무척 방대하다. 그도 그럴 것이 『패시지』(1,2권)는 저스틴 크로닌의 『트웰브』, 『시티 오브 미러』와 함께 ‘패시지 삼부작’의 첫 시작이다. 올해 미국 FOX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원작이다. 소설은 ‘에이미’란 소녀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엄마 지넷이 유부남이었던 남자와 만나 낳은 아이로 홀로 에이미를 키웠다. 몇 년 뒤 남자가 찾아왔지만 함께 할 수 없었고 지넷은 끝내 에이미를 교회에 버렸고 그곳의 레이시 수녀에게 맡겨진다. 레이시 수녀와 함께 동물원에 간 에이미는 그곳에서 울가스트라는 FBI 요원에게 납치당한다. 울가스트는 왜 여섯 살 어린 에이미를 데리고 갔을까? 울가스트의 임무는 ‘노아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실험체를 구해주는 일이다.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발견하는 프로젝트였다. 실험체라 불리는 이들은 모두 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을 선고받은 이들이었다. 에이미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울가스트 요원은 에이미를 통해 자신은 죽은 딸 에바를 떠올렸고 에이미를 데리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울가스트가 에이미가 상대하는 건 정부였고 결국엔 에이미는 그들의 프로젝트에 실험체 13이 되었다.

성경 속 선의의 뜻 그대로 ‘노아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었다. 에이미를 제외한 12명의 사전 실험체는 기괴한 능력을 가진 채 세상으로 나았고 사람들을 사냥하고 죽이기 시작한다. ‘트웰브’라 불리는 그들은 뱀파이어 바이러스를 퍼트려 세계 인류를 괴물 ‘바이럴’로 만든다. 그러니까 진짜 종말 아닌 종말이 닥친 것이다. 시간은 흘러 백 년이 지난 후 인류의 생존자들은 ‘퍼스트 클로니’란 요새를 만들어 ‘바이럴’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그곳에 그 소녀, 에이미가 나타난다. 에이미는 ‘트웰브’를 상대할 수 있는 힘,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였다. ‘트웰브’가 세상으로 나갈 때 군부대는 폭발했고 에이미도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다.

에이미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무서운 일, 그들이 저지른 가장 지독한 일이었다. 시간은 부두를 사이에 두고 갈라지는 물길처럼 그 아이를 피해 움직였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도 에이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1권, 374쪽)

소설은 이제 요새 ‘퍼스트 클로니’안에서 ‘바이럴’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새를 보호하는 조명의 배터리가 약해지고 그들을 구해줄 군대를 기다리는 그때 소녀가 나타난다. 바로 에이미가 눈을 뜬 것이다. 마지막 생존자들은 에이미를 경계하지만 곧 에이미가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식한다. 함께 ‘바이럴’과 싸울 수 있는 존재, 바이러스를 이겨낼 희망이라는 걸 말이다.

“93년 전은 바로 ‘제로의 해’, 그러니까 이 전염병이 시작된 그해라고. 93년 전 봄, 콜로라도주 텔루라이드에서 누군가가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 안에 자체 전력원이 달린 송신기를 삽입했어. 이 아이는 ‘지난 역사’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거나 다름없어. 그리고 이 송신기를 삽입한 그 누군가는 93년째 이 아이를 돌려보내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라고.” (2권, 175쪽)

‘퍼스트 클로니’의 원정대와 에이미는 진실을 찾아 떠나고 그 길은 예상했듯 험난하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에이미는 정말 유일한 희망이 맞는 걸까. ‘노아 프로젝트’의 실체를 밝힐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World War Z>나 한국 영화 <부산행>이나 <마녀>가 생각나기도 했다. 방대한 스토리와 수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지루하지 않고 집중하게 만든다. SF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만날 것이다. ‘패시지 삼부작’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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