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의 발명
수 몽크 키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좋은 날을 꿈꾼다. 좋은 날이란 어떤 날일까. 어떤 이에게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날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병원에서 퇴원하는 순간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아침을 맞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날은 오고 있는 것일까? 살기 좋은 시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맞는 말이다. 과거에는 생각도 못 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막연하게 바라고 바랐던 일상을 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살고 있다. 내가 누리는 사회의 제도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순간 현재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수 몽크 키드의 『날개의 발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소설 속 ‘사라 그림케’란 이름을 모른 채 제목만 보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내용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위한 몸부림이며 발자취라 할 수 있으니까.

 

소설은 19세기 초 미국의 남부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라와 핸드풀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얼핏 당신이 떠올리는 그것이 ‘노예제도’라면 맞다. 바로 그 이야기다. 판사인 아버지와 거대한 저택에 많은 노예를 거느리는 그림케 집안의 딸 사라는 열한 번째 생일을 맞았다. 놀랍게도 생일 선물은 열 살의 흑인 소녀 핸드풀이다. 사라가 그 시절의 보통의 주인 아가씨처럼 핸드폴을 대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집 안의 우아한 꽃처럼 자라 결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지 않았던 사라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날 거라는 희망을 품었던 핸드폴은 서로를 의지하며 친구가 되었다. 사라는 핸드풀에게 글을 가르쳤고 오빠처럼 자신도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들려준다. 둘 사이의 우정이 아름답게 피어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라의 사고와 행동은 여자라는 이유로 차단되었다. 핸드풀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약속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저지 당했다. 핸드풀 역시 사라와 친구처럼 지낼 수 없음을 확인한다.

그녀는 바늘과 실을 들고 다시 입을 닫았다. 이번에는 더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그녀의 손이 오르내리며 봉우리와 골짜기를 만들고, 골무가 반짝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붕 위에서 어릴 때 그녀가 해준 진짜 놋쇠 골무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마 저게 그 골무일 것이다. 그녀가 지붕 타일 위에 누워서 파란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던 모습, 배 위에 올려놓은 찻잔, 깃털을 가득 채운 그녀의 드레스 호주머니, 빠져나온 깃털 끄트머리가 눈앞에 선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모든 비밀을 서로에게 털어놓았다. 우리 둘이 찾아냈던, 동등한 관계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그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려고,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보려고 했지만 사라져버렸다. (377쪽)

어린 소녀였던 두 사람이 점점 자라면서 경험하는 삶은 점차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둘 사이는 묘한 끈으로 이어졌다. 그 끈은 시간이 흐르면서 때로 약해졌다가 단단해지기를 반복한다. 노예제도라는 역사적 소재를 생각하면 사라와 핸드풀의 삶은 뭔가 뻔한 여정을 예상할 수 있다. 노예의 신분이지만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핸드풀의 행동을 통해 독자는 통쾌한 기분을 느낀다. 반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라가 부모의 결정에 따라 이리저리 사교장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은 때때로 답답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사라의 내면은 언제나 많은 것들로 요동치고 있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것들, 이해할 수 없는 노예제도, 종교에 대한 다른 생각.

열 살 소녀가 35년 동안 노예로 살면서 당하는 수모와 고통은 차마 읽어나갈 수가 없을 정도다. 그 삶을 견디면서 핸드풀이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 엄마가 들려둔 영혼 나무와 엄마와 함께 만든 누빔 이불이다. 사라에게 은 단추가 그러했다. 시대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라는 그럴 수 없었다. 그림케 집안과 남부를 떠나 결혼,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로 한다. 내면의 소리를 세상에 쏟아내기 시작한다. 여성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행동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고 사람이 사람을 사고파는 노예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글을 쓰고 발표하고 강연을 다닌다. 그러면서도 항상 핸드풀을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약속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던져버렸다가 네가 되찾아준 은 단추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지금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잉크병 옆에 놓아두고 있단다. 이 단추는 항상 내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던 운명을 떠올리게 해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냥 도토리 안에 떡갈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듯이, 그렇게 아는 거야. 평생 동안 이 씨앗을 자라게 하고 싶다는 허기를 느끼며 살았어. (417쪽)

소설은 35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소녀였던 사라와 핸드풀을 중심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모임을 갖는 노예와 조금씩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이런 소설을 읽고 안도하는 부끄러운 나를 발견한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 현재가 아니라 과거라서, 역사 속 일부라고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평등과 차별이 사라진 세상이라 말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내가 속한 사회가 과연 모두에게 좋은 세상이라고 자신할 수 없으면서도.

잔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서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정을 넘어선 끈끈한 연대, 그것은 세대 간 갈등이 커지고 극심한 혐오가 가득한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모두가 좋은 날을 바라는 마음, 함께 잘 살기를 꿈꾸는 희망이라는 날개의 발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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