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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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개를 길렀다. 강아지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개였다. 친구처럼 지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는 마당에서 달려와 내에 안겼다. 몸집이 작았던 나는 그런 개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그만큼 개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신탕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먹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아는 고깃국(당시 닭고기, 돼지고기,소고기)이 아닌 국이 올라오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개를 먹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 개의 이름은 ‘존’이었고 당시 시골에서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약을 먹고 죽었다. 그 뒤로 개를 향한 애정은 멈췄다. 반려견으로 키우던 개가 죽고 다른 개를 입양하지 않는 사촌동생의 마음도 비슷한 건 아닐까.

 

김숨의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읽으면서 ‘존’이 자꾸 생각났다. 이 소설집은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가득하다. 잔혹한 사건이나 동물 학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쥐, 염소, 자라, 벌, 노루, 곤충(나비)를 소재로 쓴 소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악몽과 흉몽의 중간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 속에서 쥐를 잡으려고 애쓰고(「쥐의 발견」), 염소를 해부하려고 염소가 오기를 기다리며 감정을 억누르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만병통치약인 양 노루의 피를 먹기 위해 노루 사냥을 위해 (「피의 부름」) 떠난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에서 남편이 본 쥐를 찾을 수 없고 오고 있다는 염소는 오지 않고 노루 사냥의 길은 멀고 지루하기만 하다. 쥐 한 마리에 10만 원을 달라며 쥐를 잡겠다고 온 이들은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나’는 이제는 제발 쥐를 발견했으면 좋을 지경이다.

한때 저수지에 가득했던 자라로 자라 요리 식당을 했던 여자의 아들이 빠져 죽은 저수지에서 시신을 찾아 헤매는 「자라」, 벌들과 함께 생활하며 꿀을 얻는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 「벌」, 옆 동네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흠집 낸 열두 살 아들이 보았다는 나비를 찾아 함께 곤충채집에 나선 「곤충채집 체험학습」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분명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여자가 늘어놓는 다양한 자라 요리에 대한 설명은 보통의 그것인데 너무도 잔인하게 다가오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들이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아들이 운전하던 자동차 사고로 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척추를 다쳐 앉아 지내면서 벌통을 지켜보기만 하는 「벌」은 종종 방송에서 꽃을 따라 이동하는 양봉업자들의 일상과 비슷하면서도 혈육이 아닌 모자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평범하지 않는 아들에게서 진실을 듣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잡았던 수많은 곤충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이 소설집은 인간을 위해 실험용으로 해부대에 오르고 건강을 위해 사육당한 동물들을 위한 애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거북한 거리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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