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 진심이 열리는 열두 번의 만남
이진순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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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산다. 어제와 같은 듯 다른 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는 힘겹게 살아내고 누군가는 가뿐한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바라는 건 같다. 불운과 불행이 아니라 행운과 행복을 꿈꾸고 더 나은 성장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고단하다. 내게만 힘든 삶이 몰아치는 것 같고 세상은 자꾸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저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지키는 이들이 있어 더 나쁜 쪽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진순의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속 인물들이 그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통해 미완의 삶을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이진순이 만난 12명의 사람들은 최고가 아닌 그냥 우리였다. 영화감독, 교육자, 소설가, 화가, 공무원, 의사라는 화려한 이력을 떠나 오늘을 살아가는 보통의 이들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을 대단한 삶이라는 틀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인터뷰어 이진순이 인터뷰이를 선택한 기준은 끌림이었고 궁금함이었다. 사회의 이슈나 흐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삶이라는 점 말이다. 12명 모두가 담담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일상을 들려준다. 아픈 과거와 지독하게 힘든 현재, 그리고 다짐 같은 것들 말이다. 이진순과 그들의 대화를 읽노라면 어느 순간 가슴이 철렁하다가 웃음이 나고 속이 시원한 느낌과 놀람과 감동으로 이어진다. 12명 모두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었지만 내게는 특히 영화감독 임순례, 작가 손아람, 다큐멘터리 감독 장혜영, 효담학원 이사장 채현국의 인터뷰에 마음이 흔들렸고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우리는 항상 좋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그 반대의 경우에 쉽게 절망한다. 원하는 대로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그래서 임순례 감독의 이런 말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나의 삶을 혼내는 동시에 포근한 위로가 된다. 인생이라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법칙 같다고나 할까.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는 말을 꼭 붙잡고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잘 되는 것도 물거품 같은 거고, 못 되는 것도 다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해요. 좋은 일에도 마가 끼고, 나쁜 일에도 교훈이 있어요. 모든 일엔 다 이면이 있으니까요.(임순례, 104쪽)

그런가 하면 잘 몰랐던 인물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되어 반가웠다. 손아람, 장혜영, 채현국이 그러했다. 손아람은 작가로 알고 있었지만 그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배경은 몰랐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그가 평등, 인권, 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경험 밖의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경외감을 솔직하게 말하는 그의 신념 같은 게 전해졌다.

제가 겪어보지 못한 인생 경험을 가진 이들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매혹되는 경향이 있어요. 삶의 낭떠러지에서 아슬아슬하게 긴장을 헤치고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과 동경이 있죠. 내가 못 살아본 삶. (손아람, 197쪽)

그와 다르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살기에 급급해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뉴스나 언론을 통해 그들의 삶과 조우한다. 짧은 순간 탄식하거나 감탄한다. 장애시설에 살던 동생을 시설 밖으로 데리고 나와 함께 사는 장혜영의 일상은 그래서 처음엔 왜?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나의 편견이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반대로 왜 장애시설에 계속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세상이라 말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기는커녕 인정하는 일도 어려워하는 건 아닐까.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를 쓰고 내달린다. 그러나 그 기반을 마련하는 일은 늘 쉽지 않아서 신기루처럼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로 기약했던 ‘내일’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장혜영은 경쟁과 도태의 사이클을 거부한 대가로 학벌사회에서 명문대생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잃었지만, 대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오늘’을 벌었다. (222쪽) ​

이런 마음은 시대의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채현국의 말에 중심을 잡았다.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를 지켜보고 몸소 체험하면서 살아온 인생 선배의 말은 옳았다.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삶의 원칙을 세우며 그것을 고집하며 살아온 것이다. 오직 성공만 바라보며 살아가느라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했다. 어디서 꽃이 피고 어디서 바람이 부는 지도 모르고 곁에서 피 흘리며 홀로 싸우는 이들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삶에는 원칙이 없어요. 우리가 원칙을 이룩해가는 거예요. 시대마다 최선을 다해서 원칙을 형성해가는 과정에 있는 거지, 어느 역사에도 주어져 있는 원칙 같은 건 없어요. (채현국, 304쪽)

마지막 채현국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앞서 11명의 인물들이 겹쳐진다. 세월호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숨진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 막막하고 무기력할 때 동료의 이름과 사진을 본다는 이국종, 공무원의 충성 대상이 되는 것은 국민이라 말하는 노태강, 아무도 듣지 않는 노인들의 생애를 듣고 구술하는 최현숙, 아픈 베트남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구수정, 성소수자들에게 행복하라 말하는 엄마 이은재,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게 제일 우선이라는 윤석남, 글쓰기를 통해 자기 치유를 하고 극복한다는 황석영이 살아낸 삶의 순간들 말이다.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한 방은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망하지 않고 굴러간다. 세상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이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함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난 믿는다. (7쪽)

그들의 삶은 완벽하지 않았다. 때로 무너지고 좌절하며 절망했다. 아마도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단단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와 당신의 오늘은 어떤지 묻고 싶다. 지겹도록 힘들었는지 그래도 괜찮았는지 궁금하다. 이진순의 글처럼 항상 아름답게 반짝일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안에 빛의 존재를 믿는다면 어느 순간 반짝 일 것이다. 그 순간이 짧더라도 우리는 그 빛을 발견하고 간직할 것이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걸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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