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자신에게 만족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부족한 자신 때문에 화가 나고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 못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쌓여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모른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 사실, 이건 요즘 내 마음이다. 일상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때아닌 사춘기도 아닌데 말이다. 제법 많은 일을 겪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그렇게 대처하면서 살아왔는데 왜 자꾸 흔들리는 것일까. 친구가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다 괜찮다고 말했는데, 그 작고 소소한 상처가 결국엔 죽고 사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의 상처투성이로 결집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조건 상처를 감추고 살아야 할까.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보여줄 수 없고 혹여 타인의 시선에 상처가 아닌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현재는 그가 살아온 과거에서 시작되고, 상처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는 묘한 능력을 지녔다. 과거의 상처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내내 삶을 괴롭게 만든다. 김윤나의 『당신을 믿어요』는 그런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를 인식하고 제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안아줄 수 있는 힘에 대해 들려준다.

 

상처의 맨얼굴과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외로움과 절박함의 끝에 섰을 때, 자기 믿음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7쪽)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순간, 나는 믿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끙끙 앓다가 내게서 분리하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말하기로 다짐하는 순간, 나와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설령 그 상대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의 몫이고 나는 이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게 5년 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런 행동과 그런 마음을 가졌던 자신이 참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자꾸 말해야 상처는 작아지고 소멸하는 게 아니겠냐며 괜찮다고 말했다.

 

당신과 상처의 관계는 분명히 ‘사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찾다 보면 완전히 다른 옵션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전처럼 강한 척하지 않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 수 있고, 모두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대신 ‘서운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멈추어 질문해야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과 가까워진다. (36쪽)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보여준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난 엄마, 그런 엄마를 미워하며 살아온 시간과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버지의 폭력과 새엄마와 힘들었던 날들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잘못이 아니고 그녀의 몫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다친 마음을 돌볼 이는 자신뿐 이었으니 혼자 벽을 쌓고 경계하고 생존을 위해 애쓴 그녀가 상담을 공부하고 누군가의 상처를 들어준다. 상처를 알기에 더욱 상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보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책은 김윤나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이다. 쉽게 용서하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 들어주는 일, 궁금한 것에 대해 짐작하지 말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부모와의 관계, 독한 말로 상처를 주는 가족, 아픈 형제 때문에 희생하거나 잘난 형제 때문에 비교당하며 쌓인 상처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녀가 상담한 다양한 사례를 읽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나거나 어느 순간 눈물이 난다면 그건 책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면에 가득한 상처와 슬픔을 무시하면서 살아왔을 누군가, 자신의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처와 함께 자라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을 이미 해내고 있다는 것을요.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193쪽)

 

상처와 함께 자라는 것,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성장한다는 건 상처를 직시하는 일이고 그것을 때로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주는 순간 어느새 상처는 새 살이 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니까. 내 존재를 스스로 부정할 때마다 나는 책을 찾는다. 최근 몇 달 동안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래서 김혜남, 박종석의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었다. 기존의 심리 서적에서 다루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문장에 얼었던 마음이 녹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게 괜찮은 게 아니고 실수와 자책을 할 수 있으며 울고 싶을 때 울고 나를 부정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이 부분은 앞서 김윤나의 책에서 마주한 부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행복은 우리의 권리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72쪽)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258쪽)

우리에겐 상처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 필요하고 상처를 통해서 나와 같은 상처를 지닌 누군가를 이해하고 걱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쳐도 그 아픔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나는 내 안의 동굴로 들어가 묻을 닫아버릴 테니까.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이기에 우리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누군가, 혹은 낯선 존재, 때로는 이런 책들의 도움을 받는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내 목소리와 말투만으로 나를 알아차리는 친구가 있고 이런 책도 있다. 연달아 읽은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통해서도 많은 힘을 얻는다. 세 권의 책에서 주목하는 건 상처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알아봐 주고 들어주는 존재와 그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확신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이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당신이 옳다』, 167쪽)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이미 지난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과거에 붙잡혀 살기도 한다. 그 과정에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상처와 상실이 있다. 책을 읽고 이렇게 쓰는 동안 조금 차분해진다. 시들해졌던 내게 책은 생기를 주고 나는 조금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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