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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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사랑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자식을 향한 사랑으로 연결된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모습 말이다. 과거에는 ‘사랑의 매’도 그런 사랑에 속했었다. 아마도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소설 『보라색 히비스커스』속 십 대 소녀 캄빌리의 아버지 유진도 사랑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학교 시험에서 2등을 했다고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이니 말이다. 1등을 한 아이가 누구인지 묻고 “저 애도 머리가 하니지 두 개가 아니잖니. 그런데 왜 쟤가 1등을 하도록 놔뒀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유진은 자수성가로 일가를 이뤘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이들은 자신이 세운 계획표대로 생활해야 했고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모범생인 오빠와 다정한 어머니,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를 둔 캄빌리의 가족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아버지 유진은 신실한 가톨릭 신자로 모든 일에 감사 기도를 빼놓지 않는다.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자유를 향한 목소리를 내고 가난한 이들을 볼보며 누가 봐도 좋은 아버지이며 성공한 사람이다. 그러니 캄빌리는 아버지가 행하는 폭력을 고스란히 흡수한다. 어머니와 오빠 자자도 마찬가지였다.

 

캄빌리가 계속 이렇게 살아아가는 건 아닐까, 나는 조바심이 났다. 단 한 번도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아버지의 눈치만 보면서 자라면 안 될 텐데.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의 만남에도 제약을 두는 아버지라니. 캄빌리와 자자에게 세상은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캄빌리가 다른 세상과 교류할 기회는 오직 고모를 만날 때 뿐이었다. 소설에서 고모 이페오마는 가장 주체적인 삶을 보여준다.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아버지 유진을 설득하고 폭력의 희생자인 어머니를 위로하면서도 밖으로 나오도록 도와주고 이끄는 사람이다. 방학 동안 남매는 나이지리아 대학교의 교수인 고모 이페오마 집에서 세 명의 사촌과 생활하게 된다. 자동차에 넣을 기름이 없고 사용할 물이 충분하지 않고 먹을 음식도 없는데 그들의 생활은 캄빌리가 살아온 그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모든 게 자유로웠다. 캄빌리가 상상한 적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아마디 신부를 통해서도 캄빌리의 마음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아마디 신부를 대할 때 설레고 떨리는 캄빌리야말로 진짜 십 대의 소녀라는 게 느껴진다.

엄마가 자식한테 어떤 식으로 말하고, 무엇을 기대하는가를 통해 그 애들이 뛰어넘어야 할 목표를 점점 더 높였다. 아이들이 반드시 막대를 넘으리라 믿으면서 항상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오빠와 내 경우는 달랐다. 우리는 스스로 막대를 넘을 수 있다고 믿어서 넘은 게 아니라 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넘었다. (274쪽)

성장이란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캄빌리는 그 과정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제까지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믿었던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과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가득했다. 다른 세계로의 이동은 이전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그러면서도 그 세계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는 사실. 사촌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떠난 이페오마 고모가 그곳에서 적응하면서 나이지리아를 그리워하는 마음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거부하고 “그럼 죽을게요.” “그럼 죽겠습니다, 아버지.”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전해지는 결연한 의지처럼. 미세하게 시작된 마음의 움직임은 용기를 데려오고 행동으로 이끈다.

그래서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혹독한 성장소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단순히 성장소설로만 볼 수 없다.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한 사회, 문화, 정치, 제도의 이야기이자 우리가 겪는 세상의 모습이기 때문에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가부장 제도, 군부가 장악한 사회, 고모가 재직한 대학교의 시위 현장은 우리의 과거였고 현재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찾는 캄빌리처럼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성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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