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간관계는 매우 협소하다.그러나 깊고 넓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는 불편한 관계를 이어갈 만큼 감정의 여유도 없고 체력도 따라주지 않는다. 1년에 한 번, 아니면 두 번 만나는 친구, 만나지는 못해도 거의 서로의 일상을 돋보기처럼 보는 친구가 몇 있다. 어느 시절에는 사람을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도 했다. 그런 나를 아는 친구가 엊그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 말도 많이 하는 애였는데, 그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정말 그랬는데.” 아쉬움이 담긴 말투였다. 어쩌다 그런 나는 사라졌을까.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싫다는 건 아니다. 이형만 변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어떤 것들도 수시로 변하는 게 인생인까.

 

그건 그렇고 그저께엔 친구를 만났다. 맛있는 걸 해주겠다면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왔다.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라 뭐든 잘 한다. 매일 주방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했다. 카페에서 직접 기르는 민트를 시작으로 라임도 챙겨오고 마트에서 낙지까지 사온 정성을 어찌다 말할 수 있을까. 무지 매운 낙지볶음을 먹고 후식으로 친구가 만든 칵테일을 마셨다. 우리는 소소하지만 대단한 일상을 서로에게 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가 우리 아파트에서 찍은 길고양이 사진을 보면서 친구가 기르는 고양이 이야기를 했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궁금해하는 내 독서 목록도 알려주었다. 친구는 나를 만날 때 항상 선물을 가져오는데 그녀가 선물이라는 걸 도통 믿지 않는다. 이번엔 예쁜 선글라스를 사 왔다. 자주 써야 할 텐데. 모르겠다.

 

 

 

 

 

 

 

친구는 내가 언젠가 글에 썼던 나의 별명 ‘빨간 원피스’를 지어준 당사자다 여름이면 그 원피스가 생각나곤 한다.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는 일,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다. 아무튼 우리가 공유한 시간과 공간은 살아서 이렇게 미소를 짓게 만든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맑음이다. 6월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아직 6월이 끝난 건 아니지만. 장맛비가 내리는 밤을 기다린다. 하루 정도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쏟아지는 하염 없이 바라보고 싶다. 그런 밤에 이런 책을 곁에 두어도 좋겠지. 읽지 않더라도 눈길이 닿는 곳에 있다면 마음의 습기가 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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