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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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들은 몇이나 될까? 생각하는 그 자리에 그 대상이 있다는 건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불러온다. 이곳을 떠나 오랜 시간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친구가 나를 만나 가장 먼저 물었던 건 특정 상호의 식당이었다. 냉면집이었는데 그 식당이 그 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고 우리는 함께 냉면을 먹었다. 과거 단골이었던 친구는 식당 주인의 내력도 알고 있는 듯했다. 대를 이어서 영업을 한다는 건 쉬운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손님의 경우, 한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 대한 어려움을 알지 못하니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주주』는 그런 이야기다. 그러니까 3대째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의 일상 말이다.

 

주인공 미쓰코는 아빠와 친척 신이치와 함께 변두리에서 ‘주주’라는 이름의 햄버거 가게를 운영한다. 보통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는 듯하지만 미쓰코에게는 든든했던 엄마를 잃은 상실감으로 힘들다. ‘주주’를 빛나게 했던 엄마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요리 학교에서 공부하고 가게로 돌아온 신치이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한때 결혼을 생각할 정도의 연인이었지만 현재는 요코와 결혼했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지만 지난 시절을 생각할 때도 있다. 신이치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미쓰코의 집에 맡겨졌다. 성장하면서도 부모와의 관계는 좋지 않다. 미쓰코와 신이치는 가족과의 이별, 관계 단절을 이해하면서 일상을 공유한다.

 

소설은 매일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삶을 지루하지 않게 잘 보여준다. 맛있게 만든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손님에게 전하고 싶은 망므, 같은 동네에서 오랜 시간 가게를 운영해온 이웃과 소소한 일상을 말이다. 그들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온 끈끈한 우정을 담담하게 그린다. 미쓰코를 비롯해 아빠와 신이치가 ‘주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주주’란 공간에 소중한 추억이 있는 이들에게도.

 

우리는 수조 안의 물은 물론, 아니 미생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한 생명을 이룬다.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각자의 사생활, 갖가지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어져 있고, 또 퍼져 나가고 있다. 무한히. 이 무한은 조그만 틈새 사이사이로 실은 한없이 확대되고 있어서,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햄버거 가게일지라도 주주를 둘러싼 우주는 사실 엄청나게 광활하고 농후하다. 현재인데 모두 과거를 내포하고 있는, 우주의 별들처럼, 생명이 넘치는 태고의 바다처럼. (111쪽)

 

한가한 시간에 동네를 산책하는 미쓰코에게 그 길은 아마도 가장 편안하고 따듯한 길이다. 오가며 안부를 나누는 사람들, 그들의 웃음에 화답하는 일의 축복을 미쓰코가 어린 시절에는 절대 몰랐을 것이다. ‘주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미쓰코와 이웃의 상처와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가득할 그곳은 다른 이름의 ‘주주’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슬플 때도 힘들 때도 가게를 열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네 인생은 쉴 수가 없다. 태어남과 동시에 맺어진 관계, 그리고 언제인지 알 수 없는 그들과의 이별까지. 사는 건 참 힘들고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건 나를 둘러싼 작은 우주와 그 안에 살고 있는 다정한 이들 때문은 아닐까 싶다. ‘주주’의 안과 밖으로 이어진 그들처럼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잔잔한 일상을 통해 다정한 기운을 전해준다. 맛있는 햄버거를 먹을 때 ‘주주’를 상상하는 즐거움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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