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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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인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화가 날 때도 있다. 왜 나한테만 이러느냐고 말이다.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건  같은데 말이다. 내 고민이 제일 크고, 내 상처가 제일 깊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말해 뭐 할까,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키우고 누군가 저마다의 삶을 살아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걸 잊고 산다. 타인의 상처와 고통을 목도하고서야 비로소 내 삶의 안위에 감사한다. 큰언니의 죽음 후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감사함을 말하곤 했다. 어느 순간 그 감사는 사라지고 불평은 늘어난다. 내가 원하는 삶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 왜 이 모양으로 사는지 우울해진다. 그러다 또 정신을 차린다. 둘러보면 감사할 일이 넘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수연의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지금 여기,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는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

 

어떤 책은 읽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도 일정 부분 그렇다.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 책,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하루하루의 기록, 감당할 수 없는 통증으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마음, 그것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나를 지켜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까지 담겼다. 졸업작품 전시회로 바쁜 미대생, 졸업을 하면 어떤 일상이 펼쳐질까. 그 기대만으로도 삶이 충만했을 것이다. 그저 피곤함이라 여겼던 증상들이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니.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서울로 달려와 치료에 매달렸다. 빠른 진로를 찾기 위해 검정고시를 선택했고 15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스물도 되기 전에 6개월 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은 어떻게 들렸을까?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고 투병이 아닌 재생불량성 빈혈을 친구로 생각하기로 했지만 쏟아지는 울음을 참을 수 있었을까. 수혈을 위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마주한 위급한 상황에 저자의 마음은 우리를 모두 그곳으로 이끈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바로 곁에 생사를 오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 나도 죽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 그런데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한 사람을 눈앞에서 보니 내가 한때 바랐던 죽음을 잠시나마 들여다본 느낌이어서 마음이 걷잡을 수없이 흔들렸다.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단지 내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일이 엉켰다고, 조금 힘들다고 죽고 싶다는 말을 쉽게 입에 올렸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120쪽)

 

빈혈은 흔한 질병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재생불량성이다. 수혈을 받아야 하고 복용하는 약은 몸을 이전과 다른 몸으로 이끈다. 구토, 설사, 열, 동반할 수 있는 모든 증상이 발생한다. 골수이식을 위한 길도 멀다. 공여자를 찾기도 어렵고 찾는다 해도 기증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다. 사실, 드라마나 방송을 통해 잠깐 보고 들은 게 전부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해 잘 몰랐을 것이다. 항생제 부작용에도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항암과 골수이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책은 이처럼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한 아주 자세한 정보(증상, 단계, 치료)를 알려준다. 누군가는 ‘재생불량성 빈혈’ 투병기, 병상일기로 생각할 수도 있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봐도 좋다. 골수 이식의 과정과 입원 생활, 그 밖에 필요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니까. 더불어 저자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가지의 겪었던 수많은 감정, 그로 인해 성장하는 모습을 들려준다.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일, 도움을 받지 않고 내 의지대로 걸을 수 있는 일, 퇴원 후 일상으로의 복귀에서 겪는 어려움까지 말이다.

 

누가 내 옆에 남아있건 떠나건, 내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는 걸 뼈에 새기듯 깨달았다. 상대에게 크고 작은 의미를 부여하는 게 정말 의미가 있을까. 상대를 향한 모든 감정은 결국 내 몫에 지나지 않는다. (…) 타인을 마주하는 일은 어쩌면 좀 더 성숙한 나를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235쪽)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는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상대가 나에게 가시를 쥐여준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잡지 말기를. 내가 받지 않으면 그 가시는 상대가 계속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262쪽)

 

6년의 기록을 읽었지만 그 시간을 모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너무도 어린 나이에 단단해진 저자가 안쓰럽다가도 대단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속상해서 화가 나서 때려치우고 싶은 생이라고 말했던 우리에게 삶을 보듬게 만든다. 갖다 버리고 싶은 내 인생’이 아니라 꼭 안아주고 싶은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버티는 일, 견디는 일, 힘들겠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니까, 포기하지 말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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