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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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괜찮을까. 존재의 이유를 찾아 헤매다 끝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죽는 게 아닐까. 어떤 이는 매일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하면서 살아가고 어떤 이는 죽음을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어떤 이는 죽음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다룬 소설을 읽고 나면 의례 드는 생각이다.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후의 삶은 그 전과 같을 수 없다.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이도 있겠지만 대체로 전혀 다른 삶을 살기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이렇게 웃고 떠들어도 되는가.

 

권여선의 레몬』​은 독하고도 아프다. 아니, 잘 모르겠다. 단편으로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를 읽었고 다시 읽었는데도 모르겠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한 건 아닐까. 나는 소설 속 그 누구의 입장이 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으니까. 여고생 해언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소설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도무지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삶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헤아리고 그 삶에 개입할 수 있겠는가.

 

2002년 고등학교 3학년 해언은 죽었다. 살해당했다. 용의자는 신정준, 한만우, 두 명으로 좁혀졌지만 사건은 미결로 남았다. 언니를 잃은 다언은 엄마와 삶의 터전을 옮겼다. 다언에게 밝고 명랑함은 사라졌고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해언의 얼굴로 멍한 눈빛으로 살아간다. 17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 시간을 살며 사건이 진실에 접근한다. 권여선은 세 명의 화자를 통해 사건 그 후의 삶을 보여준다. 사건에 관련된 주요 인물을 만나 그날을 복기하는 다언, 어쩌면 진범일지도 모르는 불안한 태림, 당사자가 아닌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다언의 선배 상희.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시간이 흘렀으니 그만 하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들은 여전히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해언의 얼굴로 살아가는 다언이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그들을 향한 복수가 성공하기를 바랐다. 다언은 태림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신정준 차에 탄 언니를 봤다고 증언한 목격자이자 용의자인 한만우를 찾아간다. 그를 통해 그날의 진실을 듣고 남루하게 살아가는 그의 생활을 마주하고 그 삶에 스며든다.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까 두렵지만 하루하루를 버티며 그 안에서 소소한 기쁨을 누리는 일상에 말이다. 그날 이후 다언이 잃어버린 보통의 삶을 발견한다. 태림은 상담을 받고 기도를 하고 시를 쓰며 죄의식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우리는 누구에게 죄를 털어놓고 용서를 구해야 할까.

 

죽음은 우리를 잡동사니 허섭스레기로 만들어요. 순식간에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려요. (179)

 

돌이킬 수 없다. 죽음은 그런 것이다. 다언이 상희에게 하는 말처럼 죽음은 우리를 뭉개버린다. 뭉개버린 삶은 복구가 가능할 것일까. 산다는 것, 살아 있음의 숭고함을 잘 알지만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죽음 앞에서 통곡하고 절망한다. 살아갈수록 사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커진다. 그리고 묻게 된다. 산다는 건 뭘까.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것일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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