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치고 꽃들은 저마다의 색을 뽐낸다. 벚꽃은 벚꽃답게, 개나리는 개나리답게 고유의 색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봄이라는 계절의 생동감을 느낀다. 뭐든지 기지개를 켜는 봄, 그러나 실상 우리가 마주한 봄은 자꾸만 움츠러들게 만든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빛에서 슬픔을 본다. 어제 내린 비가 조금 일찍 내렸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부질없는 바람.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희망과 키울 수 없는 바람에 대해 말한다. 요양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돌보는 마음,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택한 결정이었지만 아버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고 그 사실을 듣는 나는 친구의 속상한 현실을 달래주지 못한다. 그저 나의 마음을 모아 친구에게 전하고 싶다. 또 누군가의 마음을 받고 싶다.

노인이 된다는 것, 내 의지대로 내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절망감, 언젠가 나의 모습도 다르지 않을 거라는 막연하면서도 정확한 예감까지. 당연한 수순으로 나아가는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걸 체감하면서도 어디선가 달려오는 불행에 우리는 망연자실한다. 예측 가능한 삶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예측 가능하다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기에 어딘가 깊게 숨어버린 것일까.

이런 기분에서 헤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을 읽고 싶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엊그제 방송에서 본 정혜신의 책, 오래전에 만났던 한귀은의 문장, 사람의 눈빛이 제철이라며 봄날을 노래한 박준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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