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센터장 윤한덕 교수가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뉴스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장례식에서 이국종 교수가 비통한 얼굴로 추도사를 읽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숨진 일도 보도되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이들에게 무참한 결과였다. 생명을 다루는 일 소중하고 숭고하다. 사명감도 필요하다. 그 사명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특정인에게만 부여해야 하는 것일까. 이국종의 『골든아워』를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생각한다. 이 책은 읽는 과정도 힘들고 그것에 대해 말을 하고 글을 쓰기가 더욱 어려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외상외과’와 ‘외과’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병원 신세를 많이 졌고 지금도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지만 의사가 쓴 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고 할까. 언론을 통해 그의 행적을 알고 있었고 최근엔 통신사 광고 모텔로 활약한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그가 쓴 책에 대해 큰 기대나 관심이 없었다. 그가 출연한 예능 토크쇼를 시청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중증외상 환자들에게 수술은 치료의 시작일 뿐, 환자는 수술만으론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인공생명유지장치들과 약물들을 총동원해 집중치료를 받아야만 하고, 이 지난한 과정을 버텨내지 못하면 환자는 죽는다. (1권. 85쪽)

 

가벼운 유머나 농담은 절대 하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에서는 단호함과 동시에 연약함이 묻어났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의료현장이 아닌 증증외상 환자의 이동과 그에 대한 치료방법과 이 땅의 의료현실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그 방송은 내게는 충격이었다. 닥터헬기에 대한 민원은 진짜 사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의아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출동한다는 걸 아는 이들이 그럴 수 있을까. 그가 들려주는 중증외상센터는 사선의 현장이었다.

 

피는 도로 위에 뿌려져 스몄다. 구조구급대가 아무리 빨리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도 환자는 살지 못했다. 환자의 상태를 판단할 기준은 헐거웠고, 적합한 병원에 대한 정보는 미약했다. 구조구급대는 현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병원을 선택할 것이어서 환자는 때로 가야 할 곳을 두고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옮겨졌고, 머물지 말아야 할 곳에서 받지 않아도 되는 검사들을 기다렸다. 그 후에도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옮겨지다 무의미한 침상에서 목숨이 사그라들었다. 그런 식으로 병원과 병원을 전전하다 중증외상센터로 오는 환자들의 이송 시간은 평균 245분, 그 사이에 살 수 있는 환자들은 죽어나갔다. 그렇게 죽어나가는 목숨들은 선진국 기준으로 모두 예방 가능한 죽음이었다. (1권. 148~149쪽)

 

막상 글로 접하는 그곳은 아비규환이었다. 생생한 현장의 기록을 읽는 일은 고통 그 이상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록한 글을 읽으면서 때로 마주하는 잔혹한 현실이 픽션이기를 바랐다. 정말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나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절대로 그런 곳에 갈 일이 없을 거라 장담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삶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누구나 사고를 당사자가 될 수 있고 내 가족이나 지인이 그곳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이기적인 우리는 증증외상센터에 대해 불만의 시선을 보내는 대학의 보직교수나 탁상공론을 펼치는 정치가와 다르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증증외상센터의 기록은 감동적이었고 참담했다. 그곳에서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 이국종 교수가 느꼈을 비루하고 절박한 생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경비를 위해 손님 대접을 위한 티 구매 비용까지 줄이고 출동 현장에서 다쳤을 때 병가를 낼 수도 없고 치료비를 신청할 수도 없는 현실이라니. 하루하루 버티고 견디는 게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과한 업무로 유산을 한 간호사,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소방헬기에 오르는 의사, 소방관, 그들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출동했다. 중증외상센터는 정말 필요한 곳이었고 충분한 지원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정부와 병원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다른 입장을 내놓고 적자의 온상이라면 이국종 교수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는 고립되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보았다. 물러설 곳이 없이 하루를 버텨나갈 때였으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꿈조차 꾸지 못했다. (1권. 102쪽)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나는 늘 내가 어디까지 해나가야 할지를 생각했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답이 없는 물음 끝에 정경원이 서 있었다.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 (2권. 316쪽)

이국종 교수는 많이 지쳐있었다. 감정과 표정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그의 글에서는 불필요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고 해야 할 말만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록이 가까운 미래에 중증외상센터를 위해 필요한 기록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이 책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너무도 화가 나고 답답하다가 울컥하고, 아프다가 따뜻했던 책이다. 개인적으로 2권의 마지막 <인물지>가 주는 감동은 이루 형용할 수 없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기록하는 이국종 교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식구이자 동지였던 그들에게 보내는 경건한 마음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당신의 마음에 온전히 들어갈 수 없고 중증외상센터의 일상을 보여줄 수 없다.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읽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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