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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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회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지나간 일에는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가.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지난 시간에 붙잡혀 시간을 보내고 반복된 실수를 저지른다. 그래서 만약에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타입슬립을 다루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 바로잡고 싶은 순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엄마와의 시간을 선택하고 싶다.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엄마라면 어떤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사신’과 ‘사자’를 소재로 한 후지마루의 소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을 읽으면서 저승사자가 등장했던 드라마가 생각났지만 엄마가 멈추고 싶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하는 거였다.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추가의 시간을 얻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이를 만날 수 있다면 그나마 죽음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사신’이나 ‘사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지만 소설 속 고등학생 사쿠라는 동급생 하나모리가 제안하는 사신 아르바이트를 수락한다. 시급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모든 아르바이트가 끝난 6개월 후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 더욱 끌렸을 것이다. 사신으로 일했던 시간의 기억은 사라진다는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런 제안이 온다면 나는 수락할까. 어이없게도 그런 상상을 잠깐 했다.

 

 그런데 사신 아르바이트는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죽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너무 두렵고 무서운 일은 아닐까. 아직 사자를 만나기도 전인데 걱정이 앞섰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사쿠라와 하나모리가 만난 이들은 그저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이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이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있노라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픈 동생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기대에 그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아사쓰키. 자신이 좋아했던 아사쓰키가 죽은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사쿠라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사쓰키에게 남은 미련이 진짜 풀린 것일까. 그 뒤에 만난 사자도 그러했다.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달라며 가정을 돌보지 않았던 시절을 후회하는 가장 구로사키, 진심을 속이고 자신의 삶에 거짓으로 대했던 히로오카, 엄마에게 학대를 받아 결국은 죽음에 이른 어린 소녀 사노미야 유. 모두 삶에 미련이 남아 죽음과 동시에 떠나지 못하고 ‘사자’가 되었고 그 삶과 화해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추가시간을 통해 완벽한 이해나 화해로 이어지지 못하더라도 후련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추가시간을 통해 사자는 미련을 풀 방도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고 나서야 사자는 비로소 청산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후회로 점철된 인생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조그마한 행복을 찾아내는 청산을. (176쪽)

 

 ‘사신’이라는 우울하고 무거운 인물을 싱그러운 고등학생으로 설정한 부분이 무척 독특하다. 산뜻하고 따뜻한 판타지라고 하면 맞을까. 생각하지 못한 반전도 놀라웠다. 읽으면서 어떤 반전을 예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쉽게 받아들인 아르바이트를 통해 사쿠라는 많은 것들을 느낀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내 곁을 떠난 소중한 이들에게 내가 잘못한 건 없을까, 나로 인해 미련이 남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이어진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먼 훗날 후회와 미련이 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만든다.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성장 드라마 같기도 한 소설이었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그 나날들이 바로 내 인생이니까. 재출발이 아니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 다들 그렇게 살아왔지. 그러니까 나도 과거를 품에 안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모든 걸 잊어버린 세상에서도 힘차게 살아갈 자신이 있으니까.” (341쪽)

 

 지금의 나를 만드는 건 과거의 나라는 사실.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한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주어진 현실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지나간 삶을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내게 다가올 삶을 향해 정진해야 한다는 당연하고도 소중한 의무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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