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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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때문인지 한때는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다. 유즈키 유코 장편소설 『고독한 늑대의 피』를 읽으면서도 박중훈과 안성기가 주연한 영화 <투깝스>가 떠올랐다. 범죄 집단과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려면 그들 이상의 대단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말이다. 체력과 정보원은 물론이며 죽음을 불사하는 용기가 있어야 할까.

 “맞아, 난 미쳤어. 수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거야.” (206쪽)

 구레하라 동부서 수사 2과 반장 오가미는 그런 형사였다. 흰색 파마나 모자를 쓰고 투박한 손목시계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영락없는 야쿠자였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야쿠자를 잡기 위해 야쿠자와 손을 잡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직접 만나보니 그 소문이 진짜인 것 같았다. 야쿠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야쿠자의 일원과는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친구였다. 신참 히오카는 오가미의 수사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오가미랑 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야 하다니.

 

 야쿠자와 관련된 금융업체 직원이 실종된 사건이 일어났다. 분명 배후에는 야쿠자가 있다는 걸 직감할 수 있다. 상대 쪽 야쿠자에서 벌인 일이다. 구레하라의 평화를 위해 야쿠자의 싸움은 멈춰야 했다. 불안에 떠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더 이상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큰일이다. 히오카는 오가미와 수사를 다니면서 오가미가 정말 야쿠자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감옥에 있는 야쿠자의 우두머리와 협상을 하거나 야쿠자의 일원에게 돈을 받는 장면도 목격했으니까. 물론 그 돈은 수사를 위해 야쿠자의 부하를 회유할 때 사용되었지만 말이다. 이런 오가미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는 투서(14년 전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대놓고 취재를 감행하는 신문기자. 그런 상황에서도 오가미는 오히려 더 당당하다.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는 모습이다. 오래전 아내와 아들을 사고로 잃고 혼자라서 그랬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오가미는 사건에 집중한다. 실종된 직원은 잔혹한 모습의 시체로 발견되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오가미는 자신의 정보원을 총동원한다. 그 과정에서 폭력 사건과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두 세력 간의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에 휩싸인다. 조직폭력배의 세력 다툼을 다룬 뉴스를 본 기억이 있지만 그들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에 소설 속 대결구도는 무척 살벌하게 느껴졌다. 야쿠자의 명예를 지키려는 자와 무조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자의 대립도 흥미로웠다.

 야쿠자 조직의 서열이나 일원의 이름이 너무 많아 왜 책 시작에 등장인물관계도를 그렸는지 알 것 같다. 나 같은 독자에게는 많은 도움을 준다. 처음엔 재미있는 줄 모르고 읽은 소설이다. 점차 인간 오가미에게 빠져든다.  후배 히오카를 향한 무뚝뚝하면서도 다정한 배려와 형사로의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은 외롭기까지 하다.  거기다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공중전화와 무전기로 연락하는 모습도 독특하다. 지금처럼 한눈에 정보를 수집하고 볼 수 있는 시대였다면 고독한 늑대 오가미만의 수사가 빛날 수 있었을까?

 하드보일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매력적인 소설일 것이다. 경찰과 야쿠자,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관계를 대담하면서도 세밀하게 그려냈다. 특히 오가미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소설 말미에 숨겨진 반전까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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