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난다.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조금 일찍 도착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된다. 그게 인생인가 보다.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저 준비할 서류가 많아지는 일, 이런저런 서류를 구경하는 일, 동생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생겼다. 한 편으로는 걱정도 크고 한 편으로는 응원하는 마음도 크다.

 

 어느 시절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 필요한 것도 없었고 소유할 것도 없었다. 마치 존재를 증명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걸 갖고 있다.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 되어버렸다. 그것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소유한다는 것, 그것은 관리한다는 것이며 제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여한다. 

 

 폭우가 이어진다. 지난 장마가 아쉬워 가던 일을 돌아온 게 아닐까 싶다. 여기저기 피해 현장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알알이 여문 과일과 농산물이 잠긴 물속에 가득하다니. 자연은 해마다 우리를 단련시킨다. 아직도 부족하다고 책망하는 것만 같다.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면서 빗소리를 들으면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숨길 수가 없다. 텅 빈 마음을 눌러 채우는 것들, 여름의 끝자락에 아껴두었던 맥주를 마시는 이유다. 걱정과 두려움들, 다가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불안. 회복되었다고 자신했던 어떤 것들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고 자리를 잡는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알기까지 거대한 형체로 우리를 압도한다.

 

 두려움과 불안의 옷을 벗어버리는 일이 필요하다. 감정의 두께를 얇고 가볍게 만들자. 다른 생각으로의 전환, 방향을 바꾸는 일상이 재미와 즐거움, 기쁨을 준다. 가벼운 수다, 살짝 과한 배달음식, 계획에 없던 책들과의 만남 같은 일이 그렇다. 9월에는, 시집을 읽어야지 하다가 검색한 책이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에세이(나는 왜 이런 편견에 갇혔는가)라고 생각한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좋아하는 김혜진의 단편 때문에 읽고 싶은 『소설 보다: 봄-여름 2018』. 읽기의 스피드를 내서 즐기는 날들을 기대한다. 너무 천천히 읽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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