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일기예보에서 예측한 대로 무섭게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한다. 빗소리를 듣고 싶어서 창문을 열었다가 달려드는 빗줄기를 밖으로 내몬다. 풀냄새, 비 냄새에 취했다가 깨어난다. 여름의 날들인 것이다. 벌써 7월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낸다는 말에 아는 동생은 내게 혼을 냈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난은 꽃을 피웠다. 난이 꽃을 피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난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기에 미안해졌다. 낮에는 몰랐던 은은한 향기가 밤을 지배한다. 여름밤, 가만히 캔맥주를 마시다 향기를 떠올린다. 곧 꽃은 지고 언제 이 꽃을 다시 볼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신비롭고 알 수 없으니 더욱 소중하다.

 

 

 

 

 

 

 우리의 통화는 그런 것이었다. 10년 동안 글과 글 사이를 오가다 말과 글 사이를 오갔다. 말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말들이,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말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고맙고도 신기한 일이었다. 말과 글 사이에 우리는 나란히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 나 자신을 위한 글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읽고 쓴다는 일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고 지탱할 것이다. 그리고 회복시킬 것이다. 쏟아지던 비를 바라보며 나는 조금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울지 않았다. 울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자라고 있다는 걸까. 문득, 그 힘이 자라는 걸 계속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이 알 수 있는 힘이기에, 나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 가져온 책은 두 권이었다. 모두 읽었고 지금은 아무것도 읽지 않고 있다. 책장에서 발견한 타샤 튜더의 ​『타샤 튜더, 나의 정원』속 꽃들을 보기만 했다. 꽃을 본다는 건 평화롭고 즐거운 일이니까.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을 다시 읽을까 꺼냈지만 읽지 않았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 드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가 제일 만나고 싶은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읽고 싶은 책은 나중으로 미뤄진다. 그래서 살며시 말한다. 책들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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