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을 고를 때 고려하는 점이 몇 가지 있다.

1. 작가 - 가수들 중에서는 데뷔 앨범이 너무 훌륭한 나머지(?) 그 뒤에 나온 앨범들이 묻혀 버리는 비운의 가수들이 있다.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하나, 그런 걸. 하지만 추리소설계에서는 대개, 명망 있는 작가의 작품은 일정 퀄리티를 보장한다. 내 사랑(?) 홈즈 시리즈를 비롯해서 브라운 신부 시리즈, 크리스티 시리즈, 엘러리 퀸 시리즈, 밴 다인 시리즈 등으로 작가별로 책을 사모으는 건 그 때문.

2. 분위기 - 추리소설의 트릭, 구성의 정교함보다는 그 책 속에 담긴 분위기를 중시하는 편이다. 추리소설은 다른 그 어떤 문학 장르보다 그 사회의 일면을 잘 담고 있다.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는 영국 상류 계층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이 그대로 드러나고, 도로시 세이어즈의 작품에는 영국 농촌 사회의 모습이, 코난 도일의 글 속에는 빅토리아 시대 말기의 우울하면서도 약간은 몽환적인 세기말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필연적으로 살인을 비롯한 '범죄' 라는 어두운 소재를 끌어들여 써야 하는데다가(샬롯 암스트롱의 '독약 한 방울' 같은 작품은 예외다), 당시 사람들의 '구미' 를 맞추는 게 필수적인 대중소설이다 보니 그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랜달 개릿의 다아시 경 시리즈는 예외)하고 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3. 출판사 - 개인적으로 해문출판사와 북하우스를 선호한다. 동서문화사는 '그 보기 힘든 소설들 출판해 주는 게 고마워서' 책을 사 보고 있는 거지, 참.. 여러 모로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음. 번역이 대체 왜 그모양이냐! 교정도 제대로 안 되어 있을 때도 부지기수고!!! 맞춤법이 안 맞거나 어법이 틀린 부분을 보면 광분하는 성격이라 가끔 책을 던져 버리고 싶을 때도 .. 쩝-_-

4. 기타 - 주변의 추천, 인터넷 서점의 리뷰 등등이 있는데 사실 거의 참고하지는 않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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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부르의 저주 - 귀족 탐정 다아시 경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6
랜달 개릿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것이 2003년이었던가. '다아시 경 시리즈'는 아주 예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출간되자마자 기쁜 마음에 아무 망설임 없이 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독특한 시대적 배경과, 어딘가 모르게 살짝 홈즈를 연상시키는 다아시 경의 매력 때문에 내 기억 속에 '상당한 수작' 으로 남아 있었다.

역사에서는 '만약' 이라는 가정이 엄밀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문학의 세계에서는 금지된 가정이란 것이 없다. 다아시 경 시리즈는 '만약 사자왕 리처드가 죽지 않았다면?' 이라는 유쾌한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불 제국이라든지, 동유럽 최고의 강대국 폴란드와 같은 설정은 현대의 우리에겐 아무래도 어색해 보이지만, 현실과의 괴리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그럴듯해 보인다 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흡인력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환타지의 단골 소재인 마법이, 환상의 껍질을 벗고 매우 일상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온다는 것도 이 시리즈의 또 다른 매력이다.

수수께끼 풀이 자체도 수준급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제일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서두에 나오는 '두 눈은 보았다' 이다. 정통적인 추리소설의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양념처럼 마법의 요소를 섞고, 거기에 적절한 반전과 권선징악적 교훈까지 담고 있으니 이 정도면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 줄 만 하지 않은가. 그 뒤에 나오는 단편들도 상당히 괜찮다. 약간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열정적인 탐정과 그를 충실히 뒤따르는 조수 --- 위대한 선배 작가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숀 오클란은 아무래도 왓슨이나 헤이스팅스보다는 더 유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 라는 독자들에게 익숙한 구도 또한 좋다. 여러 모로 다음권이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시리즈이다.

그런데 대체, 다음 시리즈는 언제 출간되는 것인가....?
이 기다림은 벌써 3년째 지속되고 있으니..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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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sf 2006-01-13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속작으로 다아시경 시리즈의 장편소설인 제2권 <마술사가 너무 많다>가 2006년 1월 13일, 드디어 알라딘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제3권 <나폴리 특급살인>도 올해 안에 출간할 예정입니다. 가능하다면 여름쯤에 아무리 늦어도 올해는 꼭!!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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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이었던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처음 읽었던 게. 당시에 난 책장을 덮으며 '뭐야 이건!!' 이라고 외쳤다. 이건 전혀 공평한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범인은 처음부터 독자의 상상력이 가 닿지 않는 머나먼 곳에 있었으므로.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화부터 났다고 해야 할까. 크리스티 여사에게 제대로 기만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책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었다.

책은 두 번, 세 번 넘게 읽고 또 읽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 독서에 관한 신념과도 같은 지론이다. 그게 결과를 알고 보면 아무래도 김이 샌다고들 하는 추리소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결과를 알고 보기 때문에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자잘한 요소들 -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라든지, 작가가 깔아놓은 여러 복선과 장치들 등등 - 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다시 보고 난 후 느꼈던 감정은 분노가 아닌 감탄이었다. 이 작가는 확실히 천재가 맞나보다. 소설을 하나 하나 뜯어 보니, 사실은 작가가 독자에게 숨긴 건 없지 않은가. 크리스티는 포와로의 말을 빌려 이곳 저곳에 단서들을 흩뿌려 놓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추리소설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눈 앞에 널려 있는 사실들을 못 보고 지나친 꼴이다. 크리스티는 독자를 속이지 않았다 - 독자들이 스스로 속아 넘어갔을 뿐.

미국의 추리소설 거장 밴 다인은 '신사적이지 못하다' 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비판했다 - 그러나 그 비판은 정당하지 못하다. 사실, 누구나 범인일 수 있다. 세상 그 누구도 범죄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머리 속에 '이 사람만큼은 범인이 아닐 거야' 라는 고정관념의 벽을 치고 추리소설을 읽는 듯 하다. 크리스티가 이 문제작을 통해 깨부순 것은 바로 그 벽이다. 그 점을 신사답지 못하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여태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추리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 이라는 점에 있어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뛰어넘는 소설은 적어도 내가 읽은 소설들 중에는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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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살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순녀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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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여사는 보수적인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때문에 그녀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들은 매우 엄격하다. 홈즈 같은 경우를 보라. 범인에게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을 때엔 주저 않고 불의(?)를 저지르기도 하지 않는가! 하지만 포와로나 마플 양에게 용서라는 단어는 흔치 않다. 애초부터 범인들을 '뭔가 결여된 사람' 으로 설정해 놓고 용서의 여지 자체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내가 주인공의 처지에 있었다면,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모든 것을 깨끗이 잊어 버리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살인은 어느 때고 위험하다. 이미 오래 전에 묻혀버린 사건을 캐고 들어가서 좋을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크리스티 여사는 악은 철저히 응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인지, 우리의 주인공들은 위험하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묻혀 버린 살인 사건 추적에 나선다. 잠자는 살인 뿐만이 아니었다. '회상속의 살인' 이나 '코끼리는 기억한다' 에서도 지나간 사건에 대한 추적이 행해졌던 적이 있다. '운명의 문' 도 이런 소설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포와로, 마플, 부부탐정인 토미 - 터펜스는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사건을 해결해 낸다. 항상 있는 일이겠지만 아슬아슬한 모험 끝에 사건은 종결되고 늘 해피 엔드. 그들은 언제까지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 식의 결말. 안전하기는 한데, 이제는 살짝 식상해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나.

개인적으로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들 중에서도 잠자는 살인과 같은 류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고찰이나 비판, 심리학적 분석보다는 '이런 류의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있어' 라고 다짐하는 편견에 찬(?) 크리스티 여사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듯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 20년 이상의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증거를 모으고 용의자를 추적하는 등의 주인공들의 행동은 항상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늘 그렇듯 가장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라는 점은 - 굳이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는 소리 아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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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09-17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유일하게 범인을 쉽게 맞춘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입니다.
구조가 너무 간결했던 것 같습니다.
리뷰의 마지막 문단에 공감합니다. 추천!
 
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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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폴 오스터를 싫어한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는 빵굽는 타자기부터 달의 궁전, 거대한 괴물(리바이어던 이었던가?), 스퀴즈 플레이 등등의 소위 대표적 소설 몇 권을 남자친구의 강력한 추천에 의해 읽어 보았으나 책장을 넘길 수록 고개는 갸웃거려 지기만 하고, 사람을 우울의 나락으로 침전시키는 그의 염세적이고 암울한 시각에는 눈살을 찌푸렸다.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었다. 무미건조하면서도 깔끔하고 간결한 문체에는 칭찬을 보내지만 - 개인적으로 간결한 문체를 신봉하다시피 하는 사람이다 - 재미가 없는걸 어떻게 하나.

하지만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야, 그러니 너도 꼭 읽어' 라는 압박 강한 추천에 의해, '난 폴 오스터가 싫은데..'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붙들게 된 것이 이 뉴욕 3부작이다. '그래,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한 번만 속아 보자' 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우울하다. 대체 뭔가 - 두 번째로 등장하는 블루와 블랙의 에피소드에서는 약간 흥미를 느꼈지만, 전체적으로 결코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는 소설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에서 미스테리한 느낌을 슬쩍 풍기던 에피소드들이 대충 합쳐지면서 추리소설적인 모양새를 가지게 되긴 했으나, 본격 추리소설처럼 에피소드들이 잘 짜여진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얼기설기 얽힌 낡은 대바구니처럼 느껴지는 구성.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폴 오스터 특유의 우울함. 나는 '이번에도 별로야' 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고 집어 던졌다.

그래도 나름대로 위대한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던지는 리뷰치고는 지나친 혹평인가? 아직 섣불리 판단하지 말기를. 분명 나는 이 책을 마음에 안 들어 했고, 폴 오스터라는 작가에 대해 일말의 호감도 갖고 있지 않게 되었는데 - 뉴욕 삼부작을 읽고 난 뒤, 그 책이 나에게 남긴 인상이 뇌리에 각인되어 도무지 떠나가지를 않는다. 뉴욕이라는 초 거대 도시,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고독에 관한 우울한 회색빛의 인상. 예전에 엘러리 퀸의 '꼬리 아홉 고양이' 에 대한 서평에서도 말한 적이 있는데, 나는 책이 주는 사회학적 의미라는 걸 중시하는 사람이고, 뉴욕 삼부작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 의미를 남겼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현실적일 것만 같은 현대인. 그러나 그들은 애매모호하고 몽환적이며 불확실한 속성을 공통적으로 가진다. 폴 오스터의 붓이 그려 낸 무채색의 스케치는 그런 현대인들의 모습을 무섭도록 정확히 표현하고 있었다. 연관이 되는 듯 안 되는 듯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세 개의 에피소드들. 거기에 등장하는 어딘지 불확실해 보이고 모호해 보이는 사람들. 난 폴 오스터가 소위 현대인들을 이런 식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멋대로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가끔가다가 흑백 영화 사진처럼 흐릿하게 빛바랜 뉴욕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떠올라 버리곤 한다.

확실하게 하고 싶은 말은, 폴 오스터와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라는 점이다. 나 또한 폴 오스터와는 영 맞지 않는 듯 싶다. '난 폴 오스터가 싫지만 이번에 그의 이미지를 반전시켜 보기 위해 이 책을 읽어 보겠어'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 글쎄. 솔직히, 말리고 싶은 심정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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