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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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이었던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처음 읽었던 게. 당시에 난 책장을 덮으며 '뭐야 이건!!' 이라고 외쳤다. 이건 전혀 공평한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범인은 처음부터 독자의 상상력이 가 닿지 않는 머나먼 곳에 있었으므로.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화부터 났다고 해야 할까. 크리스티 여사에게 제대로 기만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책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었다.

책은 두 번, 세 번 넘게 읽고 또 읽어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 독서에 관한 신념과도 같은 지론이다. 그게 결과를 알고 보면 아무래도 김이 샌다고들 하는 추리소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결과를 알고 보기 때문에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자잘한 요소들 -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라든지, 작가가 깔아놓은 여러 복선과 장치들 등등 - 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다시 보고 난 후 느꼈던 감정은 분노가 아닌 감탄이었다. 이 작가는 확실히 천재가 맞나보다. 소설을 하나 하나 뜯어 보니, 사실은 작가가 독자에게 숨긴 건 없지 않은가. 크리스티는 포와로의 말을 빌려 이곳 저곳에 단서들을 흩뿌려 놓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추리소설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눈 앞에 널려 있는 사실들을 못 보고 지나친 꼴이다. 크리스티는 독자를 속이지 않았다 - 독자들이 스스로 속아 넘어갔을 뿐.

미국의 추리소설 거장 밴 다인은 '신사적이지 못하다' 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비판했다 - 그러나 그 비판은 정당하지 못하다. 사실, 누구나 범인일 수 있다. 세상 그 누구도 범죄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머리 속에 '이 사람만큼은 범인이 아닐 거야' 라는 고정관념의 벽을 치고 추리소설을 읽는 듯 하다. 크리스티가 이 문제작을 통해 깨부순 것은 바로 그 벽이다. 그 점을 신사답지 못하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여태 세기도 힘들 만큼 많은 추리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발상의 전환' 이라는 점에 있어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뛰어넘는 소설은 적어도 내가 읽은 소설들 중에는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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