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소년을 만나다 세계신화총서 8
알리 스미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세계신화총서> 여덟 번째 작품 <소녀, 소년을 만나다>. 인간 근원의 '변신욕망'을 성과 편견, 사회적 억압이라는 문제를 녹여 누구나 공감할 만한 한 편의 아름다운 소네트로 그려냈다.

변신욕망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상향 변신과 하향 변신이 그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Verwandlung>에 등장하는 갑충으로의 변신은 인간 이하의 존재로 몰락을 다루고 있다. 거기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현재에 대한 불안과 혐오감일 것이다. 반면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중 유일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피스 이야기는 현 존재를 초월하는 '변신'을 감행함으로써 사랑을 얻는 상향 변신의 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녀가 소년을 만난다는 것...

이 단순한 사실에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엄청난 사건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세계신화총서>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시리스의 신비 세트 - 전4권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그런 게 있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상태.

일종의 코마라고 불리는 의학적 죽음의 그 상태를

나는 '오시리스의 신비'에서 보았다.

죽음을 치유할 수 있는 질병이라 생각한

이집트인들의 내세관이 이집트를 죽은 자들의 쉼터로 만들었다.

오시리스의 죽음은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며, 진행이다.

이 소설의 결말도 그렇다.




부활이라는 주제는 그 자체로 눈부시다.

이집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로서는

그것이 멀게만 느껴지고, 꿈같은 이야기로만 들린다.

그런데 이집트학의 달인(?)이라 평가받는 크리스티앙 자크의

'오리시스의 신비'에서는 죽은 자의 부활이 가능하다.

고대 종교와 제의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그러한 파라오에서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널리 퍼져 있던

그 믿음의 실체가 몹시도 궁금했었다.

그리고 자크의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서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힘은 죽은 자가 스스로 망각을 거부하는 것이며

그를 지켜보는 자들이 생명의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명의 에너지는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아비도스의 여사제 이시스라는 캐릭터는 남자인 나로 하여금 사랑에 빠져들게 한다.

남편 이케르를 죽음의 벌판에서 데려오기 위해 이집트 전역을 돌아다니며

부활 제의에 필요한 오시리스의 유체를 주워 모으는 장면들은 너무나 고전적인

사랑의 필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걸 재생시키는 순간 사랑은 죽음마저 감기로 치부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산한다.

이 소설은 그 사랑의 힘에 대한 감동적인 찬가로 읽히기도 한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소설에 나오는 갖가지 음모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고 싶다.

치밀하다는 말밖에 달리 더 할 말이 있을까.

특히 이집트의 젖줄이자 생명이고, 풍요로움의 상징이며 동시에 재앙의 원천인

나일 강은 오시리스의 신비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나일 강은 이집트의 안전과 영속을 희망하는 파라오와 이케르의 편이었다가

다시 안티프로타고니스트인 예고자와 그의 무리들의 편에 서기도 한다.

적들은 나일 강을 타고 흘러들고, 이시스는 나일 강을 타고 남편을 찾아 나선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이 신작은 한마디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소설이다.

그만큼 작가의 역량이 뛰어남을 증명한다.

이제 바야흐로 봄이다.

죽음의 계절에서 생명의 계절로 돌아섰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생명이 움트고 있다, 깨어나고 있다,

3월이 되면 거리마다 산들마다 오시리스들이 꽃을 피울 것이다.

4월이 되면 나도 사랑의 오시리스가 되고 싶다.

오랫동안 먹빛에 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련 문학과지성 시인선 264
채호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여자는 어쨌든 이뻤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라면 내 생애를 두고 ‘변태’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을지언정 꼭 한번 집착해보고 싶었다.


그녀가 사는 곳으로 찾아갔던 때는 공교롭게도 새벽이었다. 새벽안개가 걷히기 전에 간다면 발치에서나 겨우 그녀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제 막 잠이 깨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그녀는 나를 맞았다. 그녀 주위의 공기, 이제 막 멀리서 동쪽 하늘을 부끄럽게 만들며 구름에 가려진 아침 해, 심지어 내 소심함을 가려줄 줄 알았던 새벽안개마저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황금보다도 더 빛났지만 또한 그렇게 몽롱할 수가. 아, 나는 정말로 내 목적을 달성한 것이었다. 그녀의 실체는 ‘관능’이었다.


도톰한 입술과 촉촉이 젖어 더 빛나는 피부에 사로잡혀 내가 혼몽을 거듭하고 있을 때, 그 여자는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녀가 말해준 발음을 내가 제대로 알아먹었을지 어떨지는 그 당시의 내 정신 상태로 봐선 확신할 수 없어서 독자여러분께는 미안하다. 다만 그럭저럭 내가 알아먹은 대로 말하자면, 그녀의 이름은 ‘시’라고 했다.

수줍게 웃듯이 살짝, 입술을 오므렸다 벌린 짧은 순간에 정말로 어울릴 법한 이름이 아닌가. 이름이 특이하긴 하지만 당신에겐 정말 어울린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 여자의 몸에선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온갖 ‘말’들이었다. 처음에 그것은 도무지 내게 하는 말 같지가 않았다. 아직도 그녀의 곁을 어슬렁거리는 안개들, 여린 금실 같은 햇빛 줄기, 바람에게 건네는 말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그녀의 ‘몸’을 ‘듣고’ 있었더니, 내게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 말은 정녕 사랑과 유혹의 메시지였다. 맙소사. 나는 생애 처음으로 새벽안개와 햇빛과 바람에게 질투를 느꼈다.

이전까지는 그저 아름다운 여자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내게 완벽한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그 여자는 떠났다. 한 그루 나무처럼, 초록색 줄기처럼 그녀가 있던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풍경의 한 구석이 되고 말았다.

한 권의 시집을 읽고 나서 그녀의 이름이 ‘수련’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날 새벽 나에게 속삭였던 사랑의 말을 똑똑히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이런 말이었다.

‘이 종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종이를 맞바라보면서 거기에 찍힌 글자들을 읽으려 하지 말고, 어서 이 흰 종이 안으로 들어오기 바란다… 글자들의 몸과 비비고, 글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수련을 사랑했던 모네/ 모네는 수련의 육체를 가졌다.’「수련의 육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월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 휴가를 이용하여, 기차를 타면 반나절 정도 걸리는 해안으로 떠난 채 소식이 끊긴 것이다. 남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채로 실종되어버렸다.
소설은 이윽고 남자의 시선으로 초점을 옮긴다. 3인칭 제한적 시점으로 전환하는 것.

 
남자는 어느 노인의 친절한 배려에 이끌려 해안가 모래 마을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덫이었다. 그는 모래 구덩이의 오두막집에 사는 한 여자와 같이 머물게 되는 것이다.

절대적인 단절과 폭력을 행사하는 모래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며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는 모래의 여자. 남자는 모래 구덩이에서 탈출하고자 별의별 묘안을 다 짜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여자는 이미 지상의 세계에 미련이 없다. '이제 걷는 데는 지쳤어요.' 혼자 모래를 퍼내기가 힘에 부쳐 납치를 꾀한 마을 사람들과 여자.

남자의 탈출, 좌절, 섹스, 지하생활, 라디오와 거울을 원하는 여자, 모래의 유동성, 여자의 자궁 외 임신, 세계의 안과 밖이 뫼비우스 띠와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의 섬뜩함......

 

인상적인 문장: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니, 옳지 않다!(193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물 1 세계신화총서 6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가슴이 북받쳐올랐다.과연 명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