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의 서 -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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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따뜻하다. 다 읽고 나면 멸치국수 사주고 싶은 누군가가 생각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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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의 서 -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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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소녀: 가라, 썩 물러가라, 죽음의 사자여. 나는 아직 젊은 몸이니, 네 손을 대지 말아라.

죽음: 소녀여, 그 손을 다오. 그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부드러운 가슴에 조용히 잠들어라.

 

죽음의 공포에 떠는 소녀와 부드러운 말로 안심시키며 소녀를 데려가려는 죽음이 나누는 대화로 되어 있는 이 가곡의 가사는 클라우디우스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시인은 이 시를 스무 살 때 썼다고 한다.

 

박영 장편소설 <위안의 서>를 읽었다. 그리고 곧바로 위의 슈베르트 가곡을 찾아 들었다. 음악과 함께 먹먹해진 마음이 좀 더 뚜렷해졌다. 결말이 긴 여운이 남았다. 몹시 슬펐고 또한 아주 따뜻했다.


이 소설은 죽음과 대면하려는 두 존재의 이야기이다보존과학자 정안과 자살상담사 오상아는 둘 다 생기 없이 피폐한 일상을 겨우 겨우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정안이 보존처리 작업을 하여 특별전에 내보낸 사백 년 된 미라가 있다. 미라는 체구로 보아 여자인데 남자 옷을 걸치고 있다. 옷에는 새가 애벌레를 쪼아 먹는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소설은 정안과 오상아의 만남을 통해 여자가 왜 남자 옷을 입은 채 땅속에 묻히게 되었는지를 추적하며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거기에 비장함이나 대단한 로맨스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할 수밖에 없는 묘한 교감과 위안의 손길이 이 소설에는 있다. 슈베르트를 찾아 듣게 한 것은 바로 그것의 여운이었다. 죽음이든 상실이든 그것들과 마주하는 공포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 고통을 함께 바라봐주고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겠다는 의미로 손을 잡아주는 것, 또 끼니를 거르지 않았을까 염려되어 멸치국수 한 그릇 사주고 싶은 그런 것이다.

 

발굴 현장 구덩이에서 두 사람이 나눈 애잔한 몸짓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것이 정안이 시간이 정지한 청동 유물을 복원하는 장면으로 보였고, 오상아가 정안의 삶을 달래주며 위무하는 형식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둘 다 구덩이 속에서 그저 둥글어지면 되는 것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나는 그사이 그들을 내려다보는 한밤의 달이 되었고 어둠에 스며드는 숨소리 하나도 허투루 넘겨들을 수 없었다.

 

꾹꾹 눌러 쓴 듯한 진솔한 문장이 몰입감을 더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비교적 어렵지 않은 서사에 비해 가끔씩 아포리즘처럼 읽히는 문장들이 적지 않았다. 삶의 문제로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오래된 진심일 것 같았고, 이 험난한 이 세상 미약한 힘이나마 서로 나누며 응원하며 살자는 뜻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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