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타인의 해석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 당신이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말콤 글래드웰 지음, 유강은 옮김, 김경일 감수 / 김영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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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믿음의 적이 아니다. 의심과 믿음은 동반자다.˝

살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숱한 오해를 받으며 살아왔고, 나는 한동안 그것에 대해 해명을 하려 애쓰다가 끝끝내 그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남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그것은 타인에게만 국한되는 내용이 아니어서, 나 또한 모든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처럼 낯선 상대에게 프레임을 씌우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도록 면밀하게 살펴왔다. 이전에는 크고 작은 오해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낯선 상황을 기피하며 살아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와의 대면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새로운 곳에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떤 절박함으로 <타인의 해석>을 읽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상대의 오해로 인해 억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도 누군가를 쉬이 단정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이후로 현 세상과 그 안에 놓인 관계를 더 명확하게 해석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우리가 얼마나 지금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지를 일깨워 주었고, 낯선 상대를 어떻게 이해해야만 하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나는 <타인의 해석>을 읽으면서 여태껏 알고 있었던 내용-내가 아주 가뿐하게 상대를 오해한다는 사실-을 되새겼을 뿐이고, 내 앞에 놓인 세상과 낯선 상대가 품고 있는 광활한 복잡함-이 또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에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일에 그쳤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주변 사람들이 확신에 찬 채로 타인을 오해하는 경우를 무척 여러 번 목격했다. 그들은 어떠한 의심도 없이 상대를 믿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평가를 믿었다. 나는 <타인의 해석>을 읽기 전에도 그런 사람들에게 종종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는데, 내 질문에 잠시 말을 더듬던 사람들은 곧 내 말을 되받아치곤 했다 : ˝느낌이란 게 있잖아˝. 우리는 타인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 스스로의 경험이 충분하다고 자신했고, 몇 마디의 문장으로 상대를 어떤 이미지 안에 가두고, 상대가 그 밖으로 벗어나려 할 때마다 그것이 굉장히 의외의 경우인 것처럼 쳐내곤 했다. 낯선 사람을 제멋대로 오해하는 일은 복잡한 신호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생존 방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내게 주어진 해석의 자유만큼 상대에게도 상당한 존중과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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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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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331면)˝

정세랑 작가가 빚어낸 ‘심시선‘과 그녀의 가족들은 종일 나를 너무 울컥하게 만들었고, 또 그들만의 사랑스러움에 안달나게 하기도 했다. 그들은 분명히 새로운 시각을 지닌 독특한 사람들이었지만, 나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가족의 존재 방식이라 여겼고, 그들만큼의 밀도와 열도를 지닌 가족을 열망하게 되었다. ‘시선‘처럼 따가운 공기 속에서도 이를 악물며 살아내는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악착같이 버텨서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강력한 동기가 되고, 나보다도 더 나은 그들에게 내 자리를 물려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었다. 여기에서 ‘심시선‘은 우리 집 여자 어른들에서 내 앞에서 걷고 있는 모든 여자 어른들로 확장된다. 한편으로 나는 ‘심시선‘ 여사가 작가 정세랑과도 무척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늘 세상에 가진 거라곤 회의감뿐이던 독자에게 추악함 속 낭만과 그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주던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온갖 글들로 우리의 등을 밀어주고 있으므로 나 또한 끈질기게 버텨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선으로부터‘, 또 ‘세랑으로부터‘ 비롯된 조각들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곳의 공기는 여전히 한 치의 변함도 없이 오염되어 있고, 그것을 다음 세대가 물려받는 것은 꽤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시선‘과 ‘시선으로부터‘ 지속되어 온 노력들이 아이들에게 상실감보다 더 긍정적인 것들을 전달해 줄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철없는 소리를 하고 싶다. 정세랑 월드는 항상 어둠을 빨리 극복해내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다. 그래서 작품을 읽고 나면 자꾸만 순진한 바람을 내비치고 싶어지는 것 같다.

˝내 생에 이토록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는, 그러면서도 경쾌함과 꼿꼿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본 적이 있었던가.˝

뒤표지에 새겨진 추천사 중에서 박상영 작가의 문장을 옮겨 적은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자주 이 문장을 떠올렸고, 그만큼 <시선으로부터>를 잘 표현해낸 말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 어른들은 한국의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하면서 관성적으로 무기력해졌고, 누군가가 심어준 사상을 자신의 것인마냥 말하고, 쓰기를 지속한다. 동성의 어른들이 주는 갑갑함은 두 배 이상으로 나를 숨 막히게 해왔다. 그래서 ‘심시선‘ 여사 같은 인물의 존재 가능성은 어떤 희망을 물어다 주었고, 나의 시각을 트이게 했다. ‘시선‘처럼 영리하게 세상에 할 말을 던지는 사람이면 좋겠다. 쓰는 것에 대한 욕구와 그것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고 싶은 목표 의식을 꽤 선명하게 심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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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드릴게요 - 정세랑 소설집
정세랑 지음 / 아작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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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월드는 언제나 눈부실 만큼 다정하고 따뜻하다. 독자로서 이 세계를 엿볼 수 있다는 건 큰 기쁨이었다. 작품을 읽는 동안만큼은 현 세상과 인류에 대한 회의를 망각한 채 희망과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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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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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내내 난 평원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씁쓸함과 가늠하기 어려운 광활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방이 뚫린 평원에 서서 소설의 첫 대목부터 알 수 없는 위협을 감지한다. <타오르는 마음>은 ‘평원‘-굳이 현실적인 묘사가 존재하지 않아도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지는-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퇴폐적이고 울적한 스릴러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본 인생은 풀리지 않는 문제투성이고, 아무리 달려나가도 그것은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게 되고, 나는 인생이 주는 버거움과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끝내 다 게워내야 할 것만 같다. 소설 속 다 스러져 가는 마을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린 ‘비말‘ 주민들이 가진 어두운 구멍의 크기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독자는 이에 잠식당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새에 책으로 빨려 들어가 다음 장을 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마력을 느끼게 되리라 생각한다. <타오르는 마음>은 올여름 추리/스릴러 장르의 작품을 원하던 독자의 니즈를 채우고도 남아돈다.

‘평원‘과 ‘비말‘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과 그것을 행한 자의 심리를 작가는 낱낱이 묘사하면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당신 책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해?˝ 그는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무해한 얼굴을 한 채로 범죄를 방관하고, 그것의 일부에 무감하게 가담해온 우리의 책임을 묻는다. 어쩌면 소설에서 가장 오싹함을 선사했던 건 바로 이런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에 내면 속 울타리에 갇혀 한 발자국도 뛰쳐나가지 않을 ‘사불(얼마 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서 읽었던 윤성희 작가의 작품에 빗대어 보자면 ‘블랙홀‘) 이 작가에 의해서 발견되는 때, 나는 뜨끔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역시 나 또한 이득을 위해 많은 것들을 가리거나 숨기면서 지내온 건 아닐까. ‘일단 살고 봐야 할 게 아니냐‘라고 오히려 화를 내면서, 저편에서 무엇이 덮어지고 있든 간에 무심했던 것은 아닌가. 아니, 이것은 의문이 아니고 확신에 가깝다. 매년 열리는 축제들은 전부 기억하면서도, 그 반대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좀처럼 알지를 못하니까. 내가 져야만 하는 책임들을 오롯이 완수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와 수많은 오답을 견디며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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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뒤표지에서 이 문구를 발견하고는 단숨에 책에 대한 구매 욕구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전에는 보통의 경우에 부모가 내게 투자한 만큼 그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페인트>에도 언급되듯이 가족도 결국엔 비즈니스 관계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일방적으로 ‘을‘의 상태에 놓여있으면서도, 애초에 내가 ‘갑‘을 고른다는 발상은 품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건 내가 상상을 거듭하는 간절함으로 바꿔낼 수 없는 종류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변화의 가능성이 소실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철저하게 갑의 위치에서 내 의지대로 미래를 만들어 내는 그림-잔인하게도 부모의 조건에 의해 내 미래가 일정 부분 결정되니까-을 상정한다는 건 흥미로웠다. 국가에서 아이를 맡아 키운다는 설정이 꽤 일어날 법하다고 여겨 더욱 그랬다. 그러나 역시 마냥 즐겁다고만은 표현할 수 없는데,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은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닌 까닭이다. 부모가 되는 일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고, 또 관계라는 건 꼭 한 번쯤 뒤틀리고야 마는 것이어서 막상 가족이 되고 보면 다들 엇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한편으로, 책 속에서 지적되듯이 우리가 부모에 관한 결정권을 요구하고 나서면, 부모들도 새삼 자신들이 가진 선택권을 깨닫고 더 나은 인재를 가족 관계에 영입하고 싶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자식과 부모 양쪽 모두 각자의 결점을 지니고 있고, 우린 그걸 어찌어찌 견디면서 나아가야만 한다.

가족 관계에서 생겨나는 비정상적인 문제들-가정 폭력과 아동학대 등-까지 인내하면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최근 몇 년 새에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가족 관계의 실상으로 우리는 그것의 필요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문은 <페인트>에서도 발견되는데, ‘제누 301‘은 우리가 농수산품처럼 ‘원산지‘를 꼭 가져야만 하는지 독자에게 묻는다. 부모의 진정한 필요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제누 301‘을 통해 독자는 가족 범위의 확대를 목격하고, 하나의 자아가 형성되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는 데 있어 꼭 생물학적 부모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는 하지만, <페인트>의 세계관에서처럼 부모의 부재가 당연시되지는 않고 있다. 그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고, 아이의 성장에 중대한 방해가 되는 요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페인트>를 통해 우리는 좋은 어른 몇 명이 부모를 대체할 수 있고, 국가와 어른으로서 우리의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역할이 작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부모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처럼 보이나, 타의에 의해 아이들에게 생겨난 공백을 국가와 사회가 어느 정도 메꿔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디‘ 역할을 맡아 공동의 부모로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사회로의 안정적인 진입을 도와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페인트>가 청소년 문학으로 완벽하다고 느꼈던 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적으로 스스로의 행복을 발견하고 가꾸는 일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무리 밉더라도 결국에 거기에 붙들리는 일을 멈추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기를 거부하면서도 우리는 끝끝내 부모에게서 간과할 수 없는 양의 영향을 받는다. 청소년 시기에는 더더욱 그랬던 기억이 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벗어나 너만의 행복을 쟁취하라고 말해주는 이 글에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페인트>의 존재가 더 많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의 미래가 부모의 존재 유무 혹은 특성과 관계없이 스스로가 원하는 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페인팅‘해 나가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꼭 ‘부모 면접‘ 시스템이 도입되어 부모를 선택하고서야 자신의 마음대로 인생을 색칠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꼭 알게 되었으면 싶다. 나로서도 그들의 페인팅에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는 어른이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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