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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는 내내 난 평원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풍겨져 나오는 씁쓸함과 가늠하기 어려운 광활함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방이 뚫린 평원에 서서 소설의 첫 대목부터 알 수 없는 위협을 감지한다. <타오르는 마음>은 ‘평원‘-굳이 현실적인 묘사가 존재하지 않아도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지는-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퇴폐적이고 울적한 스릴러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본 인생은 풀리지 않는 문제투성이고, 아무리 달려나가도 그것은 해결되지 못한 채로 남게 되고, 나는 인생이 주는 버거움과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끝내 다 게워내야 할 것만 같다. 소설 속 다 스러져 가는 마을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린 ‘비말‘ 주민들이 가진 어두운 구멍의 크기는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독자는 이에 잠식당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자신도 모르는 새에 책으로 빨려 들어가 다음 장을 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마력을 느끼게 되리라 생각한다. <타오르는 마음>은 올여름 추리/스릴러 장르의 작품을 원하던 독자의 니즈를 채우고도 남아돈다.
‘평원‘과 ‘비말‘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일들과 그것을 행한 자의 심리를 작가는 낱낱이 묘사하면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 당신 책임이 전혀 없다고 생각해?˝ 그는 끝없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무해한 얼굴을 한 채로 범죄를 방관하고, 그것의 일부에 무감하게 가담해온 우리의 책임을 묻는다. 어쩌면 소설에서 가장 오싹함을 선사했던 건 바로 이런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경우에 내면 속 울타리에 갇혀 한 발자국도 뛰쳐나가지 않을 ‘사불(얼마 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서 읽었던 윤성희 작가의 작품에 빗대어 보자면 ‘블랙홀‘) 이 작가에 의해서 발견되는 때, 나는 뜨끔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소설 속 마을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역시 나 또한 이득을 위해 많은 것들을 가리거나 숨기면서 지내온 건 아닐까. ‘일단 살고 봐야 할 게 아니냐‘라고 오히려 화를 내면서, 저편에서 무엇이 덮어지고 있든 간에 무심했던 것은 아닌가. 아니, 이것은 의문이 아니고 확신에 가깝다. 매년 열리는 축제들은 전부 기억하면서도, 그 반대편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좀처럼 알지를 못하니까. 내가 져야만 하는 책임들을 오롯이 완수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와 수많은 오답을 견디며 나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