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긴스버그는 여성의 자리가 커지는 것을 여성이 두려워할 때, 뛰어난 여성을 여성이 모른척 할 때, 핍박받는 여성을 여성이 지켜 주지 않을 때 여성 운동은 뒷걸음치게 된다는 경고를 소토마요르를 지켜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 P1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지적인 환경에서 살고 싶다.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는 문화의 중심에서 살고 싶다. 이 모든 것과 그 이상을 원한다(145면_수전 손택).˝

영화 <콜레트>, <메리 셸리>, 그리고 <작은 아씨들> 등을 통해 우리는 여성들이 글쓰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망을 조금씩 감각하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펜대를 붙들고 놓을 줄 모르는 그녀들의 집념은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었고, 세상에 훌륭한 여성 작가들이 많았음을 새삼스레 일깨워 주었다. 이토록 여성과 글쓰기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는 책은 드물었다. 나와 같은 답답함을 느끼던 독자들에게 인생 지침이 되어줄 작품이 여기에 있다. 25명의 여성 작가의 글과 그녀들의 업적, 사상, 또 사회에 일으킨 파장을 명료하면서도 얕지 않게 소개하고 있는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는 글쓰기를 꿈꾸는 여성 독자의 지적 욕구를 채우기에 충분하다. 사실 여성 독자에게만 어필 가능한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25명의 인생 선배들이 글쓰기를 통해 지켜온 소신과 이로 인해 사회 곳곳에 일어난 변화들을 떠올려 본다면, 이 작품은 분명 2020년 올해 꼭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꼽기에 충분하다.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에는 글쓰기뿐 아니라, 책에 대한 작가들의 애정도 듬뿍 묻어난다. 그녀들은 정말 맹렬하게 독서에 빠져들었고, 이를 통해 세상이 준 슬픔을 덜어내는 한편, 자신을 괴롭힌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일조했다. 책의 세계에만 몰두하지 않고 현실적인 문제들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던 그녀들은 진정한 독자이자 작가였다. 손에서 책과 펜을 놓지 않는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치열하게 살아나는 영혼들에 애잔함을 느끼다가도, 그토록 강한 집념으로 오래도록 버텨준 작가들을 향해 존경의 박수를 고집스럽게 지치지도 않고 치고 싶어진다.

이 책에 담긴 25명의 작가들은 쓰고, 싸우고, 또 살아남았다. 그녀들의 죽음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그 열망들은 무수히 많은 글들로 현 세대의 마음에 또 다른 씨앗을 뿌렸다. 누군가는 21세기에서 나름대로 읽고 쓰며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글은 끝없이 이어져 놀라운 세대 간 연대를 만들어 낼 테다.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커다란 공명이 지금의 사회에 불러일으킬 파장이 기대된다. 우리가 어떤 글로 얼마만큼 싸우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다가오는 내일에 설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래 ‘탬버린‘은 우리에게 헉헉거리며 뛰어놀던 광란의 시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유담 작가의 ‘탬버린‘에서 울려 퍼지는 삶의 소리들은 세상만사를 잊게 만드는 즐거움과 거리가 멀다. 그들은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극복될 수 없는 억눌린 마음으로 살아가고, 동경하던 서울에 올라와서도 자신이 끝끝내 가지지 못할 삶을 깨달을 뿐이다. 그들이 목적지에 어렵사리 도달한 후 느낀 것은 희열이 아니라, ˝떠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공설운동장」, 82면)˝라는 사실이다. 탬버린을 흔들면 잊을 수 있던 아픈 시간들과 흥분의 도가니는 이곳에 없다. 소설집 <탬버린>을 읽다 보면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해도 삶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으리란 사실을 직감한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오지 않을 티타임˝을 알면서도 외면하지 못한 것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핍진한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 속에서 ˝삶을 견디는 힘이 되는 동시에 삶을 옭아매는 족쇄(「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 314면)˝인 ‘탬버린‘이 주던 환상적인 밤에 대한 갈망을 놓지 못한다.

˝이미 실패한 사람은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후회에 사로잡힌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회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두고두고 후회」, 275면).˝

노력이 최적의 보상을 장담해 주지 못하는 삶의 대열에서 ‘아버지‘들은 힘없이 낙오된다. 절대 뛰어넘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권력의 추락은 당황스럽다. 묵묵히 가정을 이끌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은 고집스레 대접을 강요하는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생계 문제 해결이 급급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를 돌볼 여력은 가족 구성원 누구에게도 없다. ˝밥 물 자격˝을 운운하는 아버지들에게 남은 것은 외면뿐이다. 그런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들의 노력도 자식들이 가진 결핍을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실패와 후회로 점철된 부모의 삶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 자식들이 펼치는 노력은 눈물겹다. 하지만 결핍의 공간(소설집에서는 ‘지방‘)으로부터 탈출해도 그들이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스타트 라인‘이 되어주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세대를 거듭할수록 나아지는 것은 없고, ˝티타임˝은 우리에게 영영 도달하지 않는다.

오늘도 사람들은 볼링공을 굴린다(「핀 캐리」). 나에게 볼링공은 글을 쓰는 일인데, 그건 우리를 살게 만듦과 동시에 현실을 포기하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종용한다. 또한 그것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이어서 언젠가 우리는 본래의 슬픔이 자리한 곳으로 되돌아 오고야 만다. 물론 삶에도 굴곡이 있고, 곳곳에 산재한 기쁨을 발견할 때도 있다. 하지만 김유담 작가는 꿋꿋이 패배에 지친 사람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글들을 읽어내는 게 싫지 않았다. 내가 늘 고집하듯이 이건 분명히 누군가의 현실이고, 쓰여야만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에 처음으로 가입한 민음 북클럽에서 ‘손끝으로 문장읽기‘라는 온라인 활동이 시작되었고, 덕분에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읽게 되었다. 이 작품은 중학생 소년이 말더듬증을 고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한 번도 말더듬증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그건 어린 시절 독자가 지니고 있던 어떤 결핍으로도 대체 가능하다. 그러니까 정용준 작가의 이번 작품은 ‘속지 말자.‘라고 다짐하면서도 기꺼이 온 마음을 내어 주던 스스로의 어린 시절과 마주하는 체험을 제공한다. 제목처럼 ‘내가‘ 말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온 신경을 문장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늘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찼던 어린아이를 품고 살아가는 어른 독자에게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과거와의 화해, 용서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너 그때 잘했어. 정말 잘했어. 멋있었어. 용감했고. 정말이야(125면).˝라고 어린 자신을 다독이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나는 손끝으로 모든 문장을 감각하며 읽어내려 가기 좋은 작품이다.

말더듬증을 가진 어린 소년에게 성장의 발판으로 작용한 것은 ‘글쓰기‘였다. 그는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아픔을 털어내고, 상대를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디딤돌 삼아 나 자신을 버텨내고 지금까지 이만큼 자라올 수 있었을까. 그건 때로는 음악이기도 했고, 또한 끊임없이 끼적거리는 일이기도 했다. 문득 다른 독자들의 ‘글쓰기‘가 궁금하다. 이제는 별로 말할 일 없는 그들의 어린 시절과 성장의 도구가 궁금해진다. 이제까지의 나는 작품을 읽어낸 후 내 생각을 정리하는 일에 바빴지만, 이번 작품에서만큼은 타인의 삶에 주제넘은 간섭을 시도하고 싶어진다. 이토록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는 책이라니, 좀 위험하다. 관계에는 역시 낭만만 존재하지는 않으니까.

아무튼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운명을, 세상을 덜 미워하게 된다면 좋겠다. 복수심보다는 미래를 꿈꾸는 마음으로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우고 싶은 하루를 보낼 수 있길, 바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시인선 135
이원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섬을 떠나는 일이/뭐가 그리 어려울까 싶은/사람이 있다면/그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그건 너에게만 그런 일이다(35면)

◎나는 오년 뒤에/아빠보다 나이가 많아질 거야//그날은/시장에서 사과를 고를 때보다도 더/아무 날이 아닐 것이고/골목을 떠도는 누런 개의 꼬리보다도/더 아무 감정도/별다른 일도 없겠지(49면)

◎얼굴 하나를 그리워한 지 오래되어/하품이 나오지만 그래도/얼굴 하나가 진득이 그리워요(74면)

시집의 제목을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그것이 청년 세대의 열망과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 ‘제주‘와 ‘술‘이라니. 항상 우리의 회동에서 주제로 다루어지는 것들이다. 그건 ‘사랑‘만큼 낭만적인 구석이 있고, 꿈꾸기를 그만둘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섬에서의 삶을 꿈꾸던 때의 나를 떠올린다. 한 번도 거주한 적 없는 공간을 마치 고향처럼 그리워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현실에서의 고통을 극복하는 법을 온전히 깨우치지 못하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나는 아득히 멀리 있는 그 섬을 그리워할 것이다.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그곳을 마치 내일은 꼭 가게 될 것처럼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또한 이원하 시인의 시집도 ‘제주‘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늘 하나의 낭만으로 내 곁에 머무를 게 분명하다. 술을 마시며 취하고 싶은 날마다 이 시집을 붙들고 규정할 수 없는 그리움에 시달리게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