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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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 때문에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을 읽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내용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사람들이 쉬쉬하던 디아스포라의 현실과 아픔을 적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만큼은 잘 간직하고 있다.


이번 ‘인문 기행’에서는 저자의 예술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이를 감상하는 깊이, 그리고 현 세계가 가진 아픔이나 고통에 대한 민감성과 공명하는 정도에 감탄하며 글을 읽었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의 가장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미술’은 저자에게 있어 유일한 탈출구이자 자신이 처한 험난한 세상을 또 한 번 일깨우는 장치였다. 그는 그림을 통해 인간의 무지함과 잔혹함을 감각하면서도 새로운 꿈과 활력을 발견한다. 세상에 대한 비관과 기대가 혼재하는 그의 감상 태도는 미국을 고찰하는 방식에도 이어진다.


이 책은 서경식 교수가 처음으로 미국을 찾았던 1980년대의 미국부터 트럼프가 집권하고 물러나는 시기까지를 다룬다. 저자가 묘사하는 미국에는 ‘선한 아메리카’도 존재하지만 사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는 전쟁과 이로 인해 모문화로부터 분리된 디아스포라로 가득하다. 자신이 가진 고통의 렌즈를 통해 세상의 아픔에 좀 더 민감하고 예민하게 공명했던 저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끝없는 ‘선한 아메리카’에 호소하고 이를 희망하는 데 집중한다. 전쟁으로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이 세계를 개탄하면서도 저자는 동시에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나는 두 형이 옥중에 있었을 때도, 30년이나 지난 지금도, ‘너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라는 ‘가차 없는 고발’(사카자키 오쓰로, 「고흐의 유서」, 『그림이란 무엇인가』, 가와데쇼보신샤, 2012년(초판 1976년)에 몸을 내던지는 심정으로 이 그림 앞에 서 있다.(163쪽)”


특히 미국은 저자가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 들어간 형들의 해방을 위해 애쓰고자 방문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가진 지역이다. 그에게는 “‘일상생활’이 허구였고, 어두운 상상 속의 감옥이나 형장이야말로 진실이었다.(257쪽)” 암울했던 시절의 한국이나 “식민 지배의 기억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는 어색한 성명을(239쪽)” 지니고 있었던 일본에서의 시기 모두 그를 한 번도 놓아준 적이 없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그는 ‘사랑으로 가득 찬 기억’을 갖기 위해 싸워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이었다. 저자가 ‘사이드’의 사망을 애통해했던 만큼 나도 저자의 부재가 몹시 안타깝다. ‘이방인’과 이방인이란 존재를 부정하며 살아가는 자들 사이를 이어주던 그의 존재가 없으니 “얼마나 거대한 상실인가.(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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