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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너 1 ㅣ 베어타운 3부작 3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2월
평점 :
요즘 원서로도 다시 읽고 있는 『오베라는 남자』를 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하키'라는 스포츠와 깊은 유대감을 가진 두 마을 '베어타운'과 '헤드'에 대한 이야기로 국내 독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 그의 글은 여전히 마음을 울린다. 모든 페이지의 귀퉁이를 접어 간직하고 싶다. 휘리릭 휘리릭 지하철에서 책장을 넘기는 동안 마을 주민들과 그 동네의 서사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이 일대에서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연결돼 있지, 좋든 싫든.(194쪽)"
스웨덴 북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베어타운'과 '헤드'. 그들은 아주 강력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얼마만큼 강력하냐 하면, "누군가가 몸을 너무 빨리 돌리면 다른 누군가는 셔츠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다. 모두의 심장이 뜯겨져 나올 수도 있다.(39쪽)" 대부분의 경우엔 미움과 증오로 가득한 둘의 관계는 하키로 시작해 하키로 끝이 난다. 두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에 하키와 연관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하키라는 단어를 꺼내놓지 않고서는 그들의 삶을 서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하키를 통해 한껏 끈끈해진 이들의 관계는 공동의 적이 생겨날 때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하지만,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들에게 '집'이라는 건 힘든 시기를 이겨내게 하는 고향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구속하는 족쇄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하키라는 스포츠가 두 마을을 어떻게 쥐고 흔드는지를 볼 때마다 놀라웠다. '프락'은 심지어 하키를 휴지에 비유한다. 코로나로 봉쇄 정책이 시행되면 사람들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휴지를 사재던 것처럼 하키는 '베어타운'과 '헤드'에게 정상 생활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양쪽 모두에게 있어서 하키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현실이자 꿈이다. 그러므로 두 마을의 하키 구단 중 한 쪽이 사라져야 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사람들이 어떤 어리석은 행동을 자행하고 또 당했는지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집착하는 대상인 하키를 빼앗겨야 하는 위기 속에서 '베어타운'과 '헤드'의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해서는 2권에서 더 자세히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베어타운' 소속으로 한때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었던 '페테르 안데르손'은 하키가 빠진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하키는 그에게 집착의 대상이었고, 집착이 없는 인생은 문이 없는 대기실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무의미하게 기다리고 있다.(135쪽)" 그러니 두 마을의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 반드시 스포츠 선수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 그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조건적이다. (...) 여기에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그런 애정의 대상이 될지 말지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411쪽)"
개인적으로 하키로 사랑받고 또 미움받는 선수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는 부분이 기억에 남았다. '바코드가 찍힌 상품'처럼 여겨지는 삶을 살아가는 '아맛'을 보면서 괜스레 한국의 아이돌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스포츠든 연예계든 사람을 상품으로 내세우는 산업이 인간과 상품 사이에서 어떤 타협점을 찾아야 옳은 일일까, 답은 나오지 않고 내 안에서도 수많은 모순이 생겨나는 이야기지만 이 책을 통해 또 생각을 더듬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어떤 최악의 상황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긴 하다. 그걸 안다면 절대 집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을 절대 놓지 않을 테니까. - P53
그 사진을 보면 모두가 그에게 요구하던 것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사실만 생각이 날 따름이다. ‘언젠가는 당신도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테니.’ - P238
어디서 태어나는가와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잔인한 복권이다. 마테오는 그들 남매를 행복으로부터 갈라놓은 것이 정확히 뭐였는지, ‘만약’의 개수를 과연 셀 수는 있을지 궁금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그게 전부다. - P285
지구상의 어느 한 곳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면 어디 살아도 다를 게 없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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