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월급사실주의 2023
김의경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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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이런 일도 익숙해질까?(163쪽)"


'월급사실주의 2023'이라는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는 지금 여기의 노동을 들여다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뭐였더라, 어쩐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는, 한 달에 한 번씩 마주해야만 하는 문구를. 그리고 이 책은 '기획의 말'만 읽어보아도 읽지 않고는 못 배긴다. 질문만 있고 해답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지나는 시간들에 대해 "치열하게 쓰겠습니다.(12쪽)" 작가 장강명은 말했고, 하, 이게 내가 한국소설을 읽는 이유지.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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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명의 작가가 그려낸 각각의 캐릭터는 입체적이고 현실과 극도로 맞닿아있다. 특히 이제 막 지나온 코로나 시대의 노동에 관해 서술함으로써 현실감을 증폭시킨다. 그들은 나였다가, 또 내가 살았을지도 모르는 삶이었다가, 내가 한때 꿈꾸던 삶이었다가, 한다. 답답함에 팔을 붙들고 울고도 싶고, 모른 척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싶던 때도 있었다. 그들의 삶에서 '보람'과 '모욕'은 한 끗 차이이고, 직업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은 '껌 종이' 같은 인생들에게 필요하지 않다. 회사에 자투리 공간이라도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다면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일 것(136쪽)"이었다. 그들에게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짓는 꿈은 요원했고, 받은 만큼만 일하면서 눈앞의 노동을 적당히 지속하는 일이 시급했다.


혁명? 그렇게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으면 된다고 외치는 이들도 있지만, "섭씨 36.5도. 혁명의 온도였다.(100쪽)" 또한 "이 절을 떠나면 또 어느 절로 가야 하는 걸까?(329쪽)"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최영의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방식」에서처럼 우리는 서로의 절을 부러워하지만 새로운 절에도 나름의 고충과 떠나고 싶어 하는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가 "시간이 지날수록 직진할 힘을 잃은 빛(332쪽)"이라는 것을 알지만, 오늘도 원래의 자리에 머무르기를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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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말 줄임표와 닮아 있다. 이런 인생이 있고, 저런 인생도 있다고 펼쳐놓지만, 이를 분석하거나 해답을 내놓는 데 치중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 여기의 고통은 '당신 자신만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습니다.'와 같은 말의 시발점을 찾는 일만큼이나 '까마아득'하고 '공허'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희망이 뭔지 몰랐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진짜로 나에게 속한 것이란 뭔지, 그런 걸 갖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도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어쩌면 말이에요.(373쪽)"


돌이켜보면 절망의 시대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희망의 실체라던가 붙잡을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앞으로도 영영 알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살다 보면 아주 가끔은 그런 형태의 씨앗 정도는 본 적이 다들 한 번쯤 있지 않던가? 그런 일이 오늘 조금, 내일 또 조금, 좀 더 빈번하게 일어나주기를 간신히 바라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찬찬히 쌓아나가면 되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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