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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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랜드』는 절멸을 목전에 둔 공간을 주요 배경으로 삼는다. 총 10개의 단편이 촘촘하게 엮여져 한 권의 소설처럼 기능하고, 독자는 작가 천선란의 거대한 아포칼립스적 상상력을 마주한다. 구원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작가 천선란의 세계 앞에서 우리는 이를 공상과학적인 요소로만 치부할 수 없다. 도리어 지구가 처한 갖은 위기를 떠올리고 기시감을 느낀다.


"네가 그랬지. 그들이 네 엄마의 이름만 제대로 불러줬어도 네 엄마는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사람만 왔더라도.(213쪽)"


다 죽어가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건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단지 우리 자신만큼 외로운 서로를 발견한다. 하나와 하나가 이어질 때 우리의 '이름'은 서로를 잇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건 어디에나 있으면서 중첩되는 순간에도 마냥 같지만은 않아서 "태어나 평생 불리며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걸 증명해(267쪽)" 준다. 각각의 작중인물은 자신이 신뢰하는 단 하나의 이름을 위해 살고 또 죽는다. 세상을 미워하고 절망하면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부름이, 기다림이, 끌어당김이 결국은 해답일 것이라고 믿는 모순적인 마음, 아니 어쩌면 절박함이 『노랜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론이 뻔해서, 하지만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상대를 찾는 일이 세상에서 진짜 제일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아서 단편의 마지막마다 작가에게 한 방 얻어맞은 채로 훌쩍훌쩍 잘도 울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왜 살고 싶지 않다는 문장과 결합되지 않고 자신의 진짜 삶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와 상통했는가.(353쪽)" 단편 「두 세계」의 문장은 『노랜드』를 잘 드러낸다. 작가는 폭발 직전까지 우리의 세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도 "숨을 쉬어야 한다고(354쪽)" 알려주는 존재를 곁에 심어둔다. 그들은 뇌우 속에서도 우리의 숨소리를 듣고, 우리의 이름을 생의 마지막까지 기억하기를 택한다. 그러니까 『노랜드』는 시대의 표어가 '적자생존'으로부터 탈피하고 있는 흐름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상대를 뛰어넘어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가 적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우리처럼(404쪽)"과 같은 문장을 믿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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