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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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나'는 '구술사' 과목을 공부하는 일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누구에게도 환대 받지 못하는 구술사 수업에 '라나'가 이토록 열을 올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구술사 연구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진실을 존재하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라나'는 지금의 콜로니로 이주하면서 자신이 세상 저편에 두고 온 '유령'들, 그러니까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들의 생이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받은 애정 어린 도움은 물론이고, 그들은 결국 그 자신이므로 '라나'는 과거를 과거로만 묻어두지 않는다. 온갖 사연으로 전뇌화 사이보그가 된 '로티'와 '터너'는, 그리고 그들을 책임지기 위해 다 죽어가는 동네에서 삶을 버티고 있는 '엘리'는 '라나'의 발목을 잡는 과거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를 이루고 있는 현재에 가깝다.


'라나'는 '유령'들을 세상 앞에 꺼내놓기 위해 "아주 단단한 무언가를" 부숴야만 하고, 여기에는 "아주 커다란 용기가 필요(108p)"하다. 특히 그는 '유령'들이 제모습을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북돋는다는 이유로 더 단단하고 기다란 벽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 속에서 되려 자신이 몸을 숨겨야 하는 순간이 와도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로티'와 더 멀리 함께 가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부끄러워한다. 하나의 세상을 등지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떠나온 것들과 받은 것들을 곱씹는다.


작가는 "개인적이고 맹렬한 동기로 견고한 문법을 부수는 사람의 마음(111쪽)"을 소설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발달 장애를 앓고 있는 자신의 언니가 함께 행복할 수 있도록 온몸을 던져 싸우고 싶은 그 마음이 감히 이해가 되어서 울고 싶은 심정이 된다. 그건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그들의 싸움이 나에게만큼은 피해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치졸한 마음에 대한 수치심이다.


작가 개인 안에 고여있던 외로운 이야기가 책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왔을 때 그가 느꼈을 어떤 충만함을 감지한다. 그런 작가에게 '라나'가 들었고, 또 듣기를 아주 오랫동안 염원해 왔을 말을 전하고자 한다. 나는 당신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이를 매 순간 기억할 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바뀌었(108쪽)"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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