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표제작 「저주토끼」부터 마지막에 배치된 「재회」까지 작가 정보라는 독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평범한 서사도 뒤통수를 치는 반전으로 온몸이 오싹거리게 만든다. 일상에서도 무궁무진한 상상의 세계에 사는 N형 인간은 잠들기 전에 독서를 시도하다 끝내 실패하고, 사람이 많은 곳을 골라가며 읽기 시작했다. 사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반전보다 작가의 삶에 대한 어떤 태도가 무척 인상 깊었다. 삶을 향한 격렬한 움직임 끝에 우리는 인생의 쓸쓸함과 외로움만을 배우게 된다는 담담한 어조가 마음에 남았다. 작가가 삶의 외로운 뒷면을 내보일 때 우리가 느끼는 건 실패에 대한 좌절감이 아니다. 그 대신에 역시 그렇지, 하는 묵묵한 끄덕임이 뒤따른다. 전무후무한 역병의 시대를 견뎌내면서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이 혼자라는 진리 하나만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의미에서 <저주토끼>가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일이 크게 놀랍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가 정보라의 세계는 삶과 죽음이 아주 얇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공존한다. 유령이나 저주인형,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등 우리가 공상이라고 믿는 일들이 몹시 자연스럽고 실제적인 현상처럼 받아들여진다. 소설 곳곳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갈망과 존재성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엿보인다. 작중인물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더 이상 기대하고 기다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자리에 계속해서 서있다. "누군가 기적처럼 찾아와서 이 삶에 묶인 나를 풀어주기를 기다리면서.(323쪽)"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그들 앞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살아있음에 큰 기쁨을 누리지 못한 피조물들이 사라진다고 해도 알아줄 이는 아무도 없다. 작가 정보라는 외로움과 쓸쓸함에 동정과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완전한 어둠 속에 홀로 선다"라는 문장이 "유일한 위안(34쪽)"이 된다. 이는 나의 몫으로 주어진 뒤틀린 삶을 살아가겠지만, 이를 반복할 존재는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즐거운 나의 집」에서 희끄무레한 그림자였던 아이가 누군가의 알아봄으로 인해 점점 더 분명한 형체와 무게를 가지게 되었던 일을 기억한다. 우리의 불행과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지만, 때로는 이런 극복이 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이 삶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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