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외로웠거든요. 저는 정말 외로웠어요.(165쪽)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배우 공상표가 인간 강은성에 가까워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상표가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인지하고, 이를 아웃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대한 고민이 주를 이룬다. 대중적으로 얼굴이 꽤 알려진 공상표이기에 커밍아웃을 두고 줄다리기하는 가족들의 마음도 심란하다. 친구, 직장동료 등 타인의 일이었다면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그게 가족의 일이 되는 순간 강은진은 치졸하게 동생을 막아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퀴어로 살아가는 건 괜찮지만 사람들한테 인정만 하지 마, 강은진의 간곡한 청에도 불구하고 공상표, 아니 강은성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왜 알면 안 되는데? (...) 사람들이 알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119쪽)" 강은성이 물었을 때 말문이 막힌 건 비단 강은진뿐만이 아니다. "내가 나를 죽여야 내 편이겠지.(122쪽)" 엄마 김미승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르던 강은성은 여기에 없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로 결심한 강은성의 눈빛에 강은진은 혈육이 아닌 생전 처음 본 낯선 이의 얼굴을 발견한다.
공상표가 처음부터 이토록 단호하게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감독 김영우의 죽음 이전에 공상표는 자기 자신의 안위와 배우로서의 앞날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배우 공상표는 감독 김영우의 좁아터진 집 안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했고, 그와 연인으로 살아갔다. "우리는 이 좁아터진 집에서만 연인이야. 이 집을 나서면 너는 어김없이 우리를 지우고 감추지. 세상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것처럼.(235쪽)" 어떤 말로도 설득할 수 없던 공상표는 한 방화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아무것도 아닌 일을 자꾸만 숨기려고 하는 자신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진짜로 소중한 것들,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린다.
이 책의 동력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힘에서 온다. "자꾸 쓰고 말해서 우리가 우리를 수치스러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거라고. 결국 내가 문제고 내가 잘못됐고 나만 사라지면 된다고 결론짓는 일을 끝내고 싶은 거라고.(256쪽)" 자기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에 내놓고 싶은 절박함은 배우 공상표 혹은 퀴어 집단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나를 가두고 가로막는 그 모든 것들(256쪽)"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싸우면서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우리 모두의 일부를 기록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소리를 듣고 창밖을 내다봤을 때 골목이 환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건 아주 오랜만의 재회에 걸맞은 제법 근사한 마무리일 것 같았다. - P130
|